매일신문

[흥]의성…봄에 가볼 만한 곳들

사촌마을, 산운마을 의성의 대표적 반가마을
조문국 사적지 작약꽃, 어디든 피어있는 자두꽃
초록 그라운드 연상되는 마늘밭도 그 자체가 진풍경

의성은 안동 못지않은 반가의 고장이다. 500년 가까운 전통마을 두 곳이 대표로 꼽힌다. 국내 전통마을의 양대산맥인 풍산 류씨의 하회마을과 여강 이씨의 양동마을에 비견된다. 전통마을 가까이에는 고운사와 수정사라는 사찰이 청량한 숲의 봄기운을 뿜어낸다.

의성의 뿌리라는 조문국 흔적을 보러 가는 길엔 의성의 효자들이 마중 나와 있다. 마늘밭은 초록의 그라운드처럼 진풍경을 뽐내고 산자락 곳곳에 하얗게 흩뿌려진 하얀색 자두꽃도 풍경에 제 색을 더한다.

점곡면 사촌마을의 대표 건축물인 만취당으로 관광객이 걸어 들어가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점곡면 사촌마을의 대표 건축물인 만취당으로 관광객이 걸어 들어가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사촌마을

점곡면 사촌리에 있는 마을이다. 입향 시조는 김자첨. 1392년 중국에 있는 사진촌마을을 본 따 만든 마을이라고 한다. 엄밀히 말해 안동 김씨 도평의공파 집성촌이다. 본관을 안동으로 하는 김씨들이 선안동, 후안동으로 나뉘고 또 파도 여러 파로 나뉘다보니 이곳 안동 김씨들은 스스로를 사촌 김씨라 부르기도 한다.

사촌마을도 여느 전통마을이 갖고 있는 스토리와 비슷한 '삼정승 탄생설'이 있는 곳이다. 널리 알려진 인물이 서애 류성룡이다. 알다시피 류성룡의 본가는 하회마을이다. 류성룡의 어머니가 안동 김씨 김소강이다. 옛사람들은 친정에서 몸을 풀었다. 산달이 가까워지면 친정으로 가서 아이를 낳고 몸을 추스른 뒤 집으로 돌아갔다.

항간에는 사촌 김씨들이 정승 탄생의 기운을 빼앗긴다며 김소강의 출산길을 막아 사촌가로숲에서 서애를 낳았다는 설이 있다. 신뢰도가 떨어진다. 서애는 둘째 아들이다. 항간의 설대로라면 첫째 아들도 사촌가로숲에서 낳았어야 한다.

사촌마을의 중심인 안동 김씨 도평의공파 종택 바깥에서 본 만취당의 모습.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사촌마을의 중심인 안동 김씨 도평의공파 종택 바깥에서 본 만취당의 모습.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황해도 관찰사를 지낸 류중영, 그러니까 류성룡의 아버지인 류서방이 이곳에서 과거시험을 준비했다고 한다. 사위의 면학 분위기를 위해 장인 김광수는 하인들에게 발걸음도 조심해야한다고 당부했다고 한다. 출산을 위해 친정에 온 딸을 막았다는 이야기는 더더욱 호사가들의 각본에 가까워 보인다.

퇴계 이황의 제자 김사원이 지은 만취당(晩翠堂)이 바로 옆에 있다. 부석사 무량수전과 함께 사가(私家)의 목조건물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꼽힌다. 특이하게 만취당 천장 대들보에 가마틀이 있다. 김소강이 사촌마을에 들어올 때 타고 온 것이라 한다.

1584년 준공된 만취당은 400년이 넘다보니 군데군데 약한 곳이 드러나 있다. 최근 보수된 흔적이 역력하다. 그 와중에 현판이 눈에 띈다. 균형있고 힘이 있다. 석봉 한호의 글씨다.

1392년 안동 김씨의 입향과 함께 식재된 것으로 알려진 천연기념물 사촌가로숲의 전경.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1392년 안동 김씨의 입향과 함께 식재된 것으로 알려진 천연기념물 사촌가로숲의 전경.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사촌마을의 서쪽, 단촌면에서 진입하는 곳에는 사촌가로숲이 있다. 천연기념물이다. 5월에서 6월로 접어들면 상수리나무, 팽나무 등 수십 종의 수종들이 울창하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웬만한 마을의 당산나무급이다. 보호수 굵기쯤 되는 나무들이 800m 가량 이어져 있다.

마을이 들어서던 1392년 마을 서편이 허한 것을 막으려 풍수지리적 관점에서 만든 숲이다. 신평면 중율리 왜가리 서식지에 겨룰 만큼 왜가리가 많았던 곳이었다. 지금은 왜가리 둥지 하나 보이지 않는다. 사촌마을은 고운사가 가깝다. 자동차로 15분 거리다.

산운마을 운곡당. 운곡 이희발이 지은 고택이다. 고택 뒤편으로 금성산이 솟아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산운마을 운곡당. 운곡 이희발이 지은 고택이다. 고택 뒤편으로 금성산이 솟아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산운마을

노신사의 중절모처럼 보이는 금성산이 마을 뒤편으로 바로 보인다. 마을 이름도 금성산을 감돌며 머무는 구름에서 나왔다. 산운(山雲)마을이다. 영천 이씨들이 정착한 지 450년 넘은 마을이다. 조선 명종 때 강원도관찰사를 지낸 학동 이광준이 입향 시조다. 별칭인 대감마을로도 알려졌다. 조선 헌종 때 형조판서를 지낸 운곡 이희발의 고향마을이다. 지금으로 치면 법무부장관이다. '대감'이란 이름이 붙은 게 이해된다.

전통 고가옥 40여채가 있다. 학록정사, 운곡당, 점우당, 소우당 등 12동의 중요 건축물과 고가옥이 어울린다.

비밀의 정원을 갖고 있는 소우당 내부 모습. 고택체험을 할 수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비밀의 정원을 갖고 있는 소우당 내부 모습. 고택체험을 할 수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아무래도 소우당(素宇堂)이다. 비밀의 정원을 갖고 있어서다. 소우당은 별채 용도로 지어졌다. 지금은 사실상 주인공이다. 마루에 걸터앉아 정원을 내다보면 숲속에 앉은 느낌이다. 일본의 아기자기한 정원과도 다르다. 고택체험을 하는 곳답다. 마루에 먼지 하나 없다.

산운생태공원으로 변신해 인기를 끌고 있는 옛 산운초교에는 공룡 모형을 비롯해 아이들의 취향에 맞춘 시설들이 설치돼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산운생태공원으로 변신해 인기를 끌고 있는 옛 산운초교에는 공룡 모형을 비롯해 아이들의 취향에 맞춘 시설들이 설치돼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산운생태공원이라는 이름으로 몇 년 새 유명해진 옛 산운초등학교가 마을과 붙어 있다. 산운마을에 잠시 들를 요량이라면 이곳 주차장에 차를 대는 게 여러 모로 편하다. 생태공원이라 하기엔 규모가 작다. 하지만 아이들의 놀이 공간으로 더없이 좋은 곳이란 건 분명하다. 안동, 의성 등 인근에 있는 학부모들이 봄나들이 최적지로 꼽는 곳이다. 운동장이던 곳은 잔디가 깔려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다. 특히 옛 학교 뒷마당과 건물 내부에 전시된 공룡 모형, 공룡 화석 등은 세대가 바뀌어도 변치 않는 아이들의 취향 저격 아이템이다. 매주 월요일과 명절에는 쉰다.

벚꽃비가 내리는 용문정의 풍경. 산운마을에서 수정사로 가는 길에 있는 용문정이 풍경화 한 폭처럼 보인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벚꽃비가 내리는 용문정의 풍경. 산운마을에서 수정사로 가는 길에 있는 용문정이 풍경화 한 폭처럼 보인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산운생태마을에서 수정사 방향으로 3km쯤 올라가면 용문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역시 영천 이씨들이 세웠다. 운곡 이희발의 영정을 모신 유초각과 가깝다. 1923년 지어졌는데 이곳의 풍경이 별나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풍경화 한 점이란 말이 아깝지 않다. 100년 된 벚나무가 제법 굵다. 벚꽃비가 내리는 때는 지났지만 5월 초순의 용문정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조문국 사적지에 피어있는 작약꽃. 5월이면 작약꽃이 조문국 사적지를 찾는 이들을 맞는다. 매일신문DB
조문국 사적지에 피어있는 작약꽃. 5월이면 작약꽃이 조문국 사적지를 찾는 이들을 맞는다. 매일신문DB

◆조문국 사적지

조문국이라는 이름이 익숙지 않다. 삼한시대 부족국가다. 감문국, 사벌국, 압독국, 이서국처럼 경북에 산재한 삼한시대 소국 중 하나다. 의성은 그 나라의 사적지를 남겨뒀다. 넓게 열린 터에 고분이 40점 남짓 봉긋봉긋 솟아있다.

전망이 나은 곳에 오른다. 현판 서체가 눈길을 잡는다. 경복궁 향원정을 닮은 '조문정(召文亭)'이다. 반가운 이름이 보인다. 경덕왕릉이다. 왕릉치고 소박하다. 신라 경덕왕과 동명이인인 조문국의 왕 경덕왕이다.

반가운 이름 하나 더. 문익점이다. 문익점면작기념비가 보인다. 구국, 애민의 정신으로 목화씨를 원나라에서 갖고 와 이곳에 파종했다는 설과 백제 때부터 면화를 재배한 기록이 있다는 설이 다투고 있지만 오랜 기간 면화와 문익점은 짝으로 따라다녔다.

조문국 사적지는 5월이면 제법 화려하다. 작약꽃이 제철을 맞는다. 뭐니뭐니해도 봄철 의성의 색깔은 진녹색과 아이보리에 가까운 하얀색이다. 굵은 파처럼 보이는 마늘줄기와 팝콘이 다닥다닥 붙은 것 같은 자두꽃이 주변 산과 밭에 끊이지 않고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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