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새론새평]리셋 필요한 문재인표 대북 정책

문 대통령이 진행한 중재자 역할
트럼프·김정은 거부로 완전 실패
북한 비핵화에 기여하고 싶으면
원점에서 대북 정책 새롭게 짜야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2일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의 재개 등 북한에 대한 제재 완화를 설득하기 위해 백악관을 찾아간 문재인 대통령을 앞에 두고, 미국의 대북한 정책의 목표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이며,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결심하고 그 결심을 실천할 때까지 북한에 대한 제재를 지속할 것이며,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의 재개는 현 시점에서는 부적절하다고 잘라 말했다.

비슷한 시각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북한 최고인민회의에서 행한 시정연설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하는 미국의 압박에 결코 굴복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하고, "남조선 당국은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돼야 한다"고 윽박질렀다.

워싱턴과 평양에서 거의 동시에 터져 나온 트럼프와 김정은의 이 같은 발언들은 대한민국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진행되어온 문재인 대통령의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려는 정책이 완전히 실패했음을 확인해준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발언은 두 사람이 모두 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을 거부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트럼프와 김정은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려는 문 대통령의 정책이 실패하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그 실패의 결정적 원인은 대한민국 또는 문 대통령이 미·북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사람들 사이에서나 국가들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려면, 중재에 나선 주체가 최소한 다음 3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 중재 대상들에 대해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처지에 있어야 한다. 둘째, 중재 대상들로부터 신뢰 내지 존경을 받아야 한다. 셋째, 현안 문제에 관한 정확한 정보들을 충분히 갖추고 있어야 한다.

실상은 어떠한가? 대한민국과 문 대통령은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독립적이지도 중립적이지도 않은 처지에 놓여 있다. 객관적으로 볼 때 북한은 대한민국의 적이고 미국은 대한민국의 존립에 필수적인 동맹국이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의 우정이 아무리 돈독해진다 해도 문 대통령이 대한민국에 대해 반역을 자행하지 않는 한, 이러한 3국 간의 객관적 관계는 변할 수 없다.

대한민국은 북한과 미국으로부터 존경은 고사하고 신뢰도 받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지금 핵무기를 가지고 대한민국과 국민을 납치해 놓은 상태이다. 북한은 납치범이고, 대한민국과 국민은 인질이며, 미국은 대한민국과 국민을 납치 상태로부터 구해내려고 노력하는 구조대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질인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정부가 납치범과 구조대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수행하겠다고 나서고 있으니 미국과 북한으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없는 일이다.

문 대통령은 지금 트럼프와 김정은으로부터 자기의 처지를 깨닫지 못한 사람으로 취급받고 있다. 김정은은 문 대통령에게 "당신은 나의 인질이니 내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라"고 강요하고, 트럼프는 문 대통령에게 "납치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구조대의 구출 노력에 적극 협조하라"고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문 대통령과 대한민국 정부는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그리고 김정은의 의도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습득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들에 관한 정보가 빈약한 문 대통령과 대한민국이 우월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미국과 북한 및 트럼프와 김정은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한다는 것은 초등학생이 대학생들의 갈등을 중재하겠다고 나서는 것과 같은 웃기는 일이다.

문 대통령이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뭔가 기여하고 싶으면, 이제부터라도 중재자가 갖추어야 할 조건들을 갖추거나 아니면 중재자 역할에 대한 미련을 갖지 말고 자신의 대북한 정책을 원점에서부터 새로이 판을 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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