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 임진왜란 이후 조선 임금들의 꿈이 하나 있었다. 바로 전란의 북새통에 불타 빈터가 된 경복궁을 다시 짓는 일이었다. 조선의 얼굴이자 심장부로 소실된 경복궁 중건에는 273년을 기다려야 했다. 흥선대원군이 1865년 나설 때까지.
떨어진 왕실의 존엄과 권위 회복이라는 명분을 앞세운 경복궁 중건의 그늘은 짙었고 백성의 고통은 컸다. 돈이 문제였다. 처음엔 원납전이란 그럴듯한 명분의 기부금에 기댔지만 결국 벼슬도 팔고 당백전 발행 등 폐단으로 물가가 오르고 백성들의 원성은 늘어 되레 대원군의 몰락을 재촉했다.
입는 옷과 먹는 음식, 사는 집은 사람의 삶에 꼭 필요한 기본 요소였다. 그래서 아예 '의식주'(衣食住)라는 한 묶음 단어로 쓰였다. 그러나 시대 변천과 함께 의식주의 개념도 달라졌다. 단순히 삶을 이어가기 위한 요소에서 이제는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에 이르렀다.
의식주 가운데 특히 집이 그렇다. 경복궁처럼 존엄과 권위를 나타내는 공간도, 안식의 쉼터가 아니라 이제는 부(富)를 셈하는 잣대나 사는 사람을 과시하는 상징으로 바뀌고 있다. 요즘 들어서는 집이 정부 인사청문회 때 고위 관료들의 발목을 잡는 굴레가 되기에 이르렀다.
관공서도 이런 흐름을 탄 탓인지 경쟁적으로 번듯한 공간 마련과 건물 치장에 한창이던 때가 있었다. 경복궁을 다시 지으면 존엄과 권위가 되살아날 것이라 여긴 대원군처럼, 곳곳의 관공서 새 건물이 문제 해결사라도 될 듯이 선을 보였다.
지금 대구는 시청 신청사 문제가 점입가경이다. 신청사 유치를 위한 4개 구·군의 경쟁이 뜨겁고 신청사 문제를 맡은 신청사건립추진공론화위원회는 과열 유치 활동을 감점하겠다며 호통을 친다. 그런데 25일 '대구시 신청사 건립의 성공 추진을 위한 대구시 및 8개 구·군 협약'을 중구청이 거부했다.
2004년 이후 15년 동안 표류했다는 신청사 문제가 끝나면 청년이 떠나고 수십 년 꼴찌인 대구 경제지표는 어떤 모습일까. 집이 바뀌면 대구 모습도 다를까. 궁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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