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재현장] 우리 목소리 들어주세요

김우정 사회부 기자
김우정 사회부 기자

대구의 대표적인 홍등가였던 속칭 '자갈마당'에 대한 폐쇄 및 철거가 지난 4월 15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00년이 넘는 어두운 역사가 마침내 자취를 감추는 것이다.

자갈마당 폐쇄 방침이 결정되면서 이곳에서 생활하던 여성 상당수는 '자활'의 길로 돌아서 새 삶을 갈구하고 희망을 꿈꿨다. 이런 이들에게 한 정치인이 내뱉은 말 한마디가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혔고, 이들을 또 한 번 편견의 감옥에 가둬 버렸다. 자활의 꿈에 부풀어 있던 이들에게 또 한 번 '주홍글씨' 낙인을 새긴 것이다. 지난해 12월 20일 홍준연 대구 중구의원은 "(성매매 여성은)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젊어서부터 쉽게 돈 번 분들이 2천만원을 지원받고 난 후 또다시 성매매를 안 한단 확신이 없다"는 발언으로 논란의 불씨를 지폈다.

이에 지역 여성단체들이 즉각적인 반발을 했고, 더불어민주당은 긴 논의 끝에 홍 구의원에 대한 제명을 의결했다. 중구의회도 역시 홍 구의원 징계 방안 논의를 위한 윤리위원회를 구성했다. 반면 그의 목소리에 동의하는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유튜브 인터뷰와 함께 징계 반대 서신을 보냈으며, 일각에서는 '소신 발언'이라며 지지를 보내 홍 구의원은 전국적인 지명도를 얻었다.

논란의 소용돌이 속에 서게 된 자활 여성. 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주는 곳은 없었다. 바로 대구여성인권센터 힘내상담소의 도움을 받아 자활 여성들의 인터뷰를 진행했던 이유다.

기자의 접촉에 센터 측에서는 적극적으로 응해 줬다. 지금껏 자활 여성들의 안전과 신변 보호 때문에 직접적인 목소리를 내기 어려워 적절한 때를 기다렸다는 것이다. 센터 측은 "자활 여성들의 불우한 생활상보다는 인권침해가 늘 발생할 수밖에 없는 장소를 우리 사회가 얼마나 오랫동안 방치하고 외면해 왔는지, 왜 여성들이 '생존'을 위해 그곳을 벗어나지 못했는지를 조명해 달라"고 당부했다.

민감한 주제인 데다 인터뷰 진행에도 제약이 많았지만 기꺼이 이들의 목소리를 지면에 담아냈던 것은 '우리도 인격을 가진 사람이다.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마저 빼앗지는 말아 달라'는 자활 여성들의 간절한 호소 때문이었다.

한 여성은 자필로 자신의 억울한 심정, 세간의 시선에 대한 생각을 담은 장문의 답변을 보내왔다.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쓴 글에서 모진 삶을 견뎌왔던 그들의 고통이 묻어 났다. 단돈 1천원이 없어 살기 위해 자갈마당으로 흘러 들어온 여성, 부모의 학대로 가족에게마저 버림받아 돌아갈 곳이 없는 여성 등 자활 여성들의 과거사는 감히 상상조차 안 될 정도였다.

자활지원사업에 대한 견해는 누구든 자유롭게 밝힐 수 있다. 하지만 원색적인 비난은 곤란하다. 특히 정치인, 더구나 자갈마당이 위치해 있던 중구 지역 구의원이라면 정확한 현실 파악과 함께,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업의 문제점, 보완 대책을 좀 더 꼼꼼히 따져 발언해야 했다. 계속되는 논란 속에서도 홍 구의원은 음지에 있는 여성들의 사회 복귀 대책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말이 없었다.

자활 여성들의 바람은 그저 평범한 일상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부디 평생 짓밟히며 힘겹게 버텨왔던 그들에게 마지막 '기회'마저 뺏지 말라. 어떠한 삶을 살아왔든 그들 역시 우리 사회의 한 일원으로 보듬어 안아야 한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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