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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덕의 스타트업 스토리] 좀비 스타트업

김경덕 컴퍼니비 대구경북센터장
김경덕 컴퍼니비 대구경북센터장

2019년 정부 창업지원사업 예산은 1조1천억원. 지난주 발표된 추가경정예산을 더하면 1조6천억원이 넘는 규모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활성화 정책으로 창업하기 좋은 시기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창업으로 성공하기가 어려운 시대임을 대변하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창업자들이 지원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흔히 발생하고 있다.

창업 생태계에서는 이런 창업자를 '좀비 스타트업'이라 부른다. 살아있는 시체와 같은 창업자, 창업 기업이 정부 정책과 지원금으로 연명하고 있어 이를 찾아내려는 숨바꼭질이 계속되어 왔다. 필자도 지원사업을 진행하며 좀비 스타트업을 찾아내기 위해 갖은 애를 써왔고 이로 인해 힘든 일도 많았다. 특히, 어느 창업자와의 줄다리기는 평생 잊을 수 없다.

그 창업자는 몇 개월 연속으로 민원을 넣는 등 심사 탈락에 대한 항의를 계속 해 왔다. 어느 날 그 창업자가 보낸 전자우편에서 특이함을 발견했다. 문서에 늘 3자리의 숫자가 적혀 있었는데 민원 관련 메일마다 항상 기재되어 있었다. 제기한 민원에 대한 창업자 본인만의 일련번호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수백여 건의 민원을 정부기관을 상대로 걸어왔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발표 기회까지 준 어느 날. 그 창업자는 발표장에서까지 대단한 소란을 피워 결국 경찰까지 출동했고 이후 그 창업자의 태도는 변해서 말썽은 생기지 않았다. 공권력을 동원해야만 억지를 막을 수 있다는 사실에 많이 허탈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러한 예를 들지 않더라도 정부 창업지원사업은 유망 창업자를 선별하는 것만큼 좀비 스타트업과의 전쟁도 늘 겪고 있다. 우수 스타트업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도 중요하지만 제도와 정책을 악용하는 좀비 스타트업에 대한 매뉴얼이라도 확립한다면 스타트업 생태계도 더욱 건강해질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김경덕 컴퍼니비 대구경북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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