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이 넘은 즈음부터 나이 듦에 조금씩 젖어든다. 그토록 뜨거웠던 가슴은 어느덧 고스란히 가라앉아 어디에서도 그 뜨거움을 쏟아내지 못한다. 그것이 못내 그리웠던 적도 또한 아쉬웠던 적도 있나 싶게 그냥 그렇게 하루하루를 지워 나가고 있는 심심한 날이 흐르고 있다. 세월감이 무뎌질 때 쯤 다가온 뜨거운 책, '이토록 뜨거운 순간'
작가인 에단 호크의 이력은 대단하다. 좋아하는 영화라면 혼자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던 내게 참 매력적인 배우, 그가 바로 에단 호크였다. '비포 선라이즈' '비포 미드나잇' '비포 선셋' 등 비포 시리즈에 출연한 배우로 유명하다. 그는 비포 시리즈를 통해서 이십 대의 젊음과 사십대의 고뇌까지 세심한 연기로 우리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진정한 연기가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영화계에서 확실한 자리를 잡아가는 그의 꿈은 작가였다. 배우로 성장하는 과정에서도 그는 꿈을 놓지 않았다. 뉴욕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며 완성한 작품이 '이토록 뜨거운 순간'이다. 그의 열정만큼 뜨거운 작품이었다. 에단 호크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가 감독으로 참여 하여 2007년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배우가 되고 싶은 텍사스 청년 윌리엄과 가수가 되고 싶은 사라의 꿈같은 젊은 날의 사랑과 열정, 그들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 섬세한 감정 표현과 함께 드러나 있다. 젊은 날,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했던 생각이 어렴풋이 난다. 지금은 그만큼의 뜨거운 열정도, 그만큼의 짜릿한 느낌도 아련하게 기억되는 그 젊은 날. 사라를 향한 윌리엄의 열정을 보며 누군가에게 이토록 집중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난 어린 시절 너무나 많은 시간을 뭔가를 흉내 내는데 소모했어. 외식을 하러 나갈 때면 우리가 완전한 가족인 것처럼 꾸몄어."-104쪽
사라와 함께 한 파리 여행에서 결혼을 꿈꾸는 스무 살의 윌리엄이 이해되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부재로 힘겨운 삶을 산 윌리엄은 얼마나 온전한 가족을 꿈꿨을까?
하지만 스무 살의 사랑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서로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바라보는 시선이 달랐다. 윌리엄은 사라에게 온전히 자기만을 바라보기를 원했지만 사라는 그렇지 않았다.
"난 자아를 지키고 싶고, 나만의 인생을 찾고 싶어."-173쪽
사라는 윌리엄의 사랑보다 자기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찾는데 더 집중한다. 윌리엄의 뜨거운 사랑도 사라의 진정한 자아도 그때 그 젊은 시절 느낄 수 있는 뜨거운 감정이다. 그 시절 그들만이 누릴 수 있는 자유로운 욕망과 열정을 이들은 고스란히 만끽하고 있었다.
"난 빨리 늙어버렸으면 좋겠어. 그러면 더 이상 장래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가 없겠 지."-85쪽
그때는 우리도 그랬다. 나이가 들면 모든 것이 해결 되리라는……. 하지만 나이 들어보니 알겠다. 젊음, 그 찬란한 날이 너무나 그립다고.
"우리가 어릴 때는 온 세상이 너의 꿈을 좇으라고 격려해주지, 그런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어찌된 영문인지 꿈을 찾아가려고 아주 작은 시도라도 할라치면 사람들은 몹시 불쾌해한단 말이야."-83쪽
당혹스런 대사였다. 젊은이들에게 꿈과 가능성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그 젊은이들이 자라날수록 우리들은 꿈을 놓고 현실과 마주하라고 한다. 사라가 말한 것처럼…….
윌리엄과 사라의 열정적인 사랑과 혼란, 꿈을 향한 몸부림, 이 모든 것이 아우러진 한 편의 젊은 날의 초상화와 같은 소설이었다. 그들의 젊음, 그 자체만으로도 내겐 황홀했다.
권영희 학이사 독서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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