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택시기사가 들려준 얘기다. 취업 준비생 아들과 밥상머리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황망한 경험을 했단다. 한때 명문대에 입학했다고 승객들만 타면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던 아들인데, 공무원 시험에 번번이 낙방해 3년째 백수다. 속이 상해 한소리 했더니 따지듯이 일장 연설을 늘어놓더란다. "대학 졸업만 하면 취직하던 때는 지났습니다. 직장 구해봐야 결혼도 못 하고 애도 못 낳습니다. 집도 없는데 어떻게 결혼합니까. 요즘 양육비, 교육비가 얼마인지 아십니까. 아버지 세대가 단물 다 빼먹고 우리는 설거지나 할 판입니다." 아버지가 뭐라고 답할 새도 없이 아들은 밖으로 나가버렸다.
명예퇴직 후 택시를 몬다는 기사는 현 정부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이야기를 맺었다. "정부가 무능해 경제를 파탄 냈어요. 경제가 이 꼴이니 부모 세대가 원망을 뒤집어쓰는 겁니다." 하기야 명문대 졸업한 아들이 못나서라고 할 수는 없잖은가.
청년 3명 중 1명은 '기성세대가 노력에 비해 더 큰 혜택을 누리고, 다른 세대를 배려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65세 이상 노인세대에 대한 인식은 더 나빴다. 절반가량(47.7%)이 '노인은 다른 세대보다 더 많은 정부 지원을 받는다'고 생각했고, 3명 중 1명(34.1%)은 '존경받지 못한다'고 답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지난해 15~39세 청년 3천133명에게 물어본 결과다.
왜 이처럼 청년들의 분노가 커지고 있고, 그 대상이 기성세대가 됐을까. 전문가들은 '기성세대가 상대적으로 쉽게 성취했던 것들을 청년층은 더 많이 노력해도 얻기 어려워지면서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고도성장기에 자라난 기성세대는 가난했지만 취업 걱정은 없었다. 40년 전인 1979년 대학 진학률은 남성이 29%, 여성이 20%였다. 취직해서 부지런히 저축하면 집 장만이 가능했고, 교육비 탓에 아이를 못 낳는다고 하소연할 정도도 아니었다.
일자리도, 내 집 마련도 남 얘기처럼 들리는 청년들에게 기성세대는 고도성장의 수혜자이자 미래세대의 부담일 뿐이다. 생산연령인구 100명이 부양해야 할 고령인구, 즉 노년 부양비는 2017년 18.8명에서 2067년 102.4명으로 치솟을 전망이다.
미래세대의 부양 부담은 세대 갈등을 확산시킬 수 있다. 재정 적자 우려가 커지고 있는 국민연금·건강보험 등을 유지하고 꾸준히 세금을 거둬서 국가 재정을 운용하려면 청년층 1명이 내야 할 보험료와 세금이 더 늘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세대 차이와 갈등은 늘 존재했다. 그런 불협화음이 발전과 혁신의 동력이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그런 경험을 했다. 청년들은 기성세대를 디딤돌이며 이정표이자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봤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청년들에게 기성세대는 원망의 대상이자 부담스럽기만 한 짐짝이 되고 말았다.
문제의 해결은 기성세대들이 '꿈꾸는 것조차 사치'라며 좌절하는 청년들을 이해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남 탓만 하는 무책임한 젊은이'가 아니라 '두터워진 계층의 벽에 갇혀 신음하는 젊은이'로 봐야 답을 찾을 수 있다. 고도성장의 수혜자인 기성세대가 저성장의 피해자인 젊은 세대를 보듬어야 한다.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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