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중국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붉은 색을 좋아하는 넓디넓은 나라, 진시황과 만리장성으로 유명한 나라, 한 때 큰 형님으로 모셨던 나라 정도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을 어느정도 안다는 사람들도 소설이나 고전 역사를 통해 알게 모르게 중화주의 사상에 사로잡혀 중국을 바라보는 일이 많았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중국이 과연 진짜 중국일까?

이 책은 하, 은, 주 시대부터 21세기인 오늘날까지 중국인이 즐겨 먹는 음식을 통해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논하고 있다. 중국인이 신성하게 여기는 생선, 양고기, 복숭아 등 음식에서부터 지배층의 통치원리를 엿볼 수 있는 훠궈, 동파육, 돼지고기 등 음식 그리고 국제정세와 문화교류의 흔적이 남아 있는 소주, 후추, 고구마 등 음식까지 중국인의 식탁에 오르내렸던 32가지 음식을 통해 오천 년 중국 역사의 흐름을 들여다본다.

중국 황실의 운명을 바꾼 결정적 음식으로 호떡이 등장한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756년 안녹산이 반란군을 이끌고 수도인 장안으로 쳐들어왔을 때, 피란길에 나선 현종과 양귀비는 허기를 달래고자 양국충이 사다 바친 호떡을 먹었다. 호떡의 뿌리는 서역의 중앙아시아에서 먹는 난이라는 밀가루 빵인데, 실크로드를 거쳐 중국으로 전해졌다. 호떡이 전해지면서 중원의 상류층에는 오랫동안 호떡 열풍이 일었고 한나라 제12대 황제인 영제는 매일 호떡만 먹다시피 하고 살았다. 호떡이 길거리 간식이 아니라 상류층의 별미였던 것이다. 이를 통해 실크로드가 열린 이후 서역의 문명과 문화가 중원보다 앞섰거나 최소한 뒤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중국 국경을 넘나든 음식을 통해 세계정세와 정치, 경제, 문화 교류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15세기부터 시작된 유럽의 대항해 시대 개막은 향신료 무역이 직접적인 동기였고 그 중심에는 후추가 있었다. 중국에서도 후추가 서양 못지않게 귀하고 비싼 것은 마찬가지 였고, 후추에 열광했던 것 역시 서양보다 덜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중국은 후추를 찾아 대항해를 떠났고 그 결과 후추를 비롯한 대량의 향신료를 확보했다. 후추 덕분에 건국 초기의 명나라는 안정적 기반을 다질 수 있었지만 후추로 인한 권력다툼 때문에 명나라가 쇠약해졌다. 후추가 중국 역사를 바꾸는 계기가 된 것이다.

훠궈 중에 최악의 조건에서 생겨난 음식이 홍탕이다. 홍탕인 충칭 훠궈의 기원에 대해선 청나라 말기 도광제 때 발달했다는 설도 있고, 청나라 멸망 이후 중화민국 시절인 1920년대에 비롯됐다는 설도 있다. 그중 가장 일반적인 것은 양쯔강과 자링강이 만나는 쓰촨성 충칭의 부둣가에 일하던 노동자, 특히 배를 밧줄에 묶어 흐르는 양쯔강 물결을 거슬러서 소처럼 배를 끌고 올라가는 선부들이 먹었던 홍탕이 기원이라는 설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일꾼들이 내다 버리다시피 하는 소 창자와 천엽, 오리 내장 등 부스러기 고기를 긁어모아 잠깐 쉬는 틈에 펄펄 끓는 육수에 데쳐 먹고는 서둘러 일하러 갔던 것이다. 이런 전통이 남아 있기에 지금도 충칭훠궈의 재료로 소의 천엽과 내장 등이 인기가 높다고 한다.
동양인은 언제부터 음식에다 시험 통과의 소망을 담아 먹기 시작했다. 최초의 합격 기원 음식은 무엇이었을까? 남아 있는 기록은 없지만 당나라 선비들이 과거 시험을 보러갈 때 먹었다는 돼지족발이 최초가 아니었을까 싶다. 당나라 때는 과거 시험이 끝나 장원 급제자가 나오면 붉은색 먹으로 급제자의 이름과 답안지 제목을 적어 수도인 장안에 붙였다. 이런 장원 급제자 대자보를 '주제(朱題)'라고 했다. 중국어로는 '주티'이다. 그런데 주티(朱題)와 돼지족발을 뜻하는 '주티(猪蹄)'가 발음이 같다. 그렇기에 당나라 선비들이 돼지족발을 먹으며 자기 이름과 답안 제목이 대안탑에 내 걸리기를 소원했던 것이다. 지금도 중국 일부 지방에서는 시험 볼 때 합격을 빌며 돼지족발을 먹는다.
중국 근대사에서 음식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는 마찬가지다. 1971년 중국과 미국이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비밀협상을 통해 화해와 수교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식사 자리에서 나온 베이징 오리구이 덕이었다. 팽팽한 줄다리기 속에 깨지기 일보직전까지 갔던 협상이 점심식사를 기점으로 화해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다. 미국 특사 헨리 키신저에게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가 밀전병에 오리구이를 사주며 베이징 오리구이 먹는 법과 유래에 관해 설명하면서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진 것이다.
흔히 샥스핀은 중국 황제들이 먹었다는 고급 요리라고 하지만 역대 중국 황제 중에 샥스핀을 먹어본 사람이 거의 없다. 진시황은 말할 것도 없고 당, 송, 원, 명의 황제 중에도 상어지느러미를 먹었다는 기록은 없다. 19세기 후반 청나라 말기 몇몇 황제의 식탁에 샥스핀이 올라왔을 뿐이다. 확인된 기록에 의하면 명나라 때만 해도 광둥을 비롯한 남부에서 주로 먹었을 뿐 황제가 사는 북방까지 퍼진 요리는 아니었다. 그리고 상어지느러미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1972년 닉슨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 때 국빈 만찬 요리에 등장하면서부터다.
지은이는 "우리가 먹는 음식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규정한다"면서 "한 시기를 풍미한 음식들은 그 자체로 긴밀하게 정치, 사회, 문화를 이해하는 가장 원초적인 코드가 된다"고 했다. 328쪽 1만4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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