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신 스님의 첫 인상이 무척 부드러웠다. 속세의 나이(64세)가 떠올려지지 않을 정도로 상당히 동안(童顔)이었다. 그보다 더 인상 깊었던 것은 스님의 눈빛이 매우 청명하고 해맑았다는 사실이다. 마치 속세에 물들지 않은 갓난아이의 눈빛을 떠올렸다. 그런 첫 인상에 맞게 스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스님은 무척 속세와 중생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한 분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덕신 스님이 주지로 있는 대륜사는 절이 조그맣다. 첫 눈에 보면 저게 절이 맞나 라고 눈을 의심하게 만들 정도로, 심지어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다. 팔공산 대로에서 몇 백 미터 걸어 들어가 능성동에 있는 마을에 자리 잡고 있는 대륜사는 별로 의식하지 않으면 쉬 지나칠 정도로 절 외경이 평범하다. 그런 대륜사의 모습은 덕신 스님과 흡사하다는 느낌이었다. 마주 앉은 상대방의 경계심을 한 방에 무너뜨리고 곧바로 마음을 활짝 열게 할 정도로 조용하고 편안한 어조의 덕신 스님의 말씀을 들으면 속세에 가져온 온갖 스트레스와 시름도 단박에 사라진다. 그 분을 통해 세상사와 불교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분은 무척 겸손하고 중생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배려 깊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님과 마주한 불과 두 시간 남짓의 시간이었지만 속세를 떠나 불교 세계에 흠뻑 젖게 만들어주었기에 저절로 옷깃을 여미게 만들었다.
덕신 스님은 불교계 최초의 장애인 포교단체인 '원심회'를 1988년에 창립했다. 아울러 '좋은 벗 풀경소리'라는 불교 단체의 2대 회장을 맡으면서 찬불가 보급에 앞장 선 장본인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역대 조계종 총무원장을 맡은 바 있는 의현, 탄성, 월주, 고산, 정대 스님은 덕신 스님의 포교 원력을 제대로 알아보고선 주요 소임을 맡긴 걸로 알려졌다. 2002년까지 12년 동안 포교국장, 사회국장, 총무국장을 거쳐 조계종 내 최초의 문화국장이라는 직함도 덕신 스님의 이력이다.
덕신 스님이 모신 큰 스님 묘심 스님은 비구가 아닌 비구니다. 이 또한 불교계에서 무척 생소한 일이라고 한다. 살아생전 노래하는 것을 무척 좋아한 묘심 스님을 덕신 스님은 8년 내내 그야말로 귀 막고 눈 막고 입 막고 살았다고 한다. 큰 스님의 모난 행동과 모진 말씀도 견디면서 덕신 스님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그 분을 떠나지 않고 지켰다. 덕신 스님에겐 묘심 스님이 수행의 전부라고 할 만큼 수행승의 뿌리였기에 큰 스님의 그 어떤 박대와 모짐도 충분히 견딜 수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묘심 스님의 불력은 덕신 스님을 대륜사에 꽁꽁 묶어둘 정도로 컸다고 한다. 묘심 스님은 7년 전 입적했고 그 분의 불심을 이어받아 덕신 스님은 한결 같은 마음으로 팔공산 능성동의 평화로운 마을 한 자락에 위치한 대륜사를 묵묵히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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