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다문화야구단 홈~런

대구다문화야구단 선수들이 4일 연습경기에 앞서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선수들은 주말마다 연습과 시합을 병행한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대구다문화야구단 선수들이 4일 연습경기에 앞서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선수들은 주말마다 연습과 시합을 병행한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지난 5월 4일 대구시 달서구에 위치한 희성전자 야구장에서는 다문화 가정 아이들로 팀을 이룬 대구다문화야구단(이하 다문화야구단)과 한성태권도장 야구팀의 친선 경기가 열렸다. 앳된 얼굴의 다문화야구단 투수 조한빈(14) 군은 볼을 날카롭게 포수 글러브로 꽂아 넣었다. 날렵한 체형이 삼성 라이온즈 윤성환 선수를 닮은 한빈 군은 빠른 공을 던지면서도 제구력이 좋아 상대 타자들을 연이어 압도했다. 윤성민(15) 군이 타석에 들어서 2루타를 때려내자 경기장에는 함성이 쏟아졌다. 체감온도가 30℃를 넘긴 이날 매섭게 공을 던지는 투수와 시원하게 받아치는 타자들 사이의 긴장감으로 경기장의 열기는 더욱 높아졌다.

대부분이 초등학생인 다문화야구단은 주말마다 연습장에 모여 훈련과 시합을 병행한다. 이곳에는 실력을 검증받아 프로선수를 꿈꾸는 아이도, 단순히 운동이 좋아 참석하는 이들도 있다. 다양한 아이들이 모여있지만 다문화야구단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이들에게 각자의 역할이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아이들을 위해 재능 기부를 하는 사람들 그리고 열심히 땀 흘리며 꿈을 키워나가는 아이들을 만나보자.

◆재능기부와 열정의 절묘한 만남

다문화야구단은 아이들이 위축되지 않고 스스로 사회의 일원이라는 자신감을 가지게 하고 소통과 협동심을 고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2015년 설립되었다. 야구를 하고 싶은 아이를 위해 한국에 시집온 다문화 엄마들이 한국다문화야구연맹에 직접 연락해 대구본부 창설을 요청했다. 이에 김영조 다문화야구단 회장을 비롯한 야구 선수 출신들이 재능기부를 수락하면서 야구단이 꾸려졌다. 대구본부 백종길 사무국장은 다문화야구단을 창단하면서 프로 선수를 배출하는 것보다 아이들이 즐겁게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중점을 두었다. "대한민국 산업이 외국인 노동자 없이 안 돌아가잖아요. 다문화가정도 상당히 늘어났고 결국 이들도 우리 사회의 일원이지 않습니까. 피부색이 다르다고 애들이 의기소침해지고 주류가 되지 못한다면 엄청난 손실 아니겠어요? 아이들이 운동을 하면서 자신감을 되찾고 타인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운다."고 설립취지를 말했다. 실제로 다문화야구단 아이들은 운동을 통해 친구 관계가 좋아지고 집단 속에서 자기 역할을 책임지는 방법을 배워나가고 있다.

다문화야구단과 한성태권도장 야구팀이 친선 경기를 벌이고 있다. 이채근 기자
다문화야구단과 한성태권도장 야구팀이 친선 경기를 벌이고 있다. 이채근 기자

아이의 변화는 부모가 먼저 알아챈다. 입단 3년 차 유승현(13) 군의 아버지 유승범(52) 씨는 아들의 변화가 놀랍고 감사할 따름이다. "실제 다문화 가정이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집이 많지 않아 아이들한테도 돈을 많이 못 씁니다. 애들이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생이 되면서 그런 사실을 인지하면서 많이 위축돼요. 따돌림 문제도 빈번해 엇나가는 애들이 많아요. 근데 승현이가 야구를 하면서 에너지를 운동하는 데 집중하고 스트레스를 발산하니까 예민한 성격도 고치고 친구도 많이 만들었다."고 말했다. 승범 씨는 아들이 야구 훈련을 하는 날이면 함께 연습장을 찾아 아이들을 응원한다. 승현이는 내년 야구부가 있는 중학교로 입학해 프로 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이어갈 계획이다.

◆"투타를 겸비한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올해 다문화야구단은 뜻깊은 4주년을 맞았다. 다문화야구단 창단 멤버인 김민승(14) 군이 실력을 인정받아 정식 야구부가 있는 밀양 동강중학교에 입학한 것이다. 초등학교 야구부 출신이 아닌 민승 군은 다문화야구단에서 3년간 꿈과 실력을 키웠다. 야구는 재정적인 지원 없이는 훈련을 이어가기 쉽지 않은데 다문화야구단을 통해 적성을 찾고 실력을 확인했다. 민승 군은 장학금을 포함한 스카우트 제의를 받기도 했고 지난해부터 KBO 야구장학생으로 선정되었다. KBO 유소년 야구장학금의 경우 야구 실력뿐만 아니라 학업성취도, 인성 및 교우관계를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현재 민승 군은 투수와 타자, 두 포지션을 연습할 수 있는 학교로 진학했다. 정식 야구부 생활이 처음인 만큼 좀 더 자신의 기량을 점검해보고 가능하다면 투·타가 모두 뛰어난 선수로 성장하는 것이 민승 군의 목표이다. 아들이 야구를 시작하고 가장 만족한 것은 민승 군의 부모님이다. 민승 군이 장학금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만만찮은 뒷바라지 비용이 들어간다. 베트남에서 시집온 어머니 이선혜씨는 "아들이 야구를 즐길 뿐만 아니라 한층 성숙해진 모습에 일하는 보람이 크다"고 말한다. "야구를 하니까 가정교육이 저절로 되더라고요. 사실 맞벌이를 하느라 집에서는 잔소리만 했는데 공동생활속에 아들이 스스로 바뀌어 있어요. 엄마도 잘 도와주고 솔선수범을 하는 거예요. 아들이 즐거워하고 또 긍정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니 뿌듯합니다."라고 말했다.

윤성민 선수가 타석에서 날아오는 공을 타격하고 있다. 이채근 기자
윤성민 선수가 타석에서 날아오는 공을 타격하고 있다. 이채근 기자

◆책임감 넘치는 주장

윤성민 군은 다문화야구단의 든든한 주장이다. 4년 차 연습생으로 탄탄한 기본기뿐만 아니라 팀에서 선배 역할을 하고 있다. 성민 군은 야구선수가 아닌 요리사를 꿈꾸고 있지만 친구들이 모여 땀 흘리며 운동하는 그 자체가 즐겁다. 날이 갈수록 팀 워크가 좋아지는 동생들을 보면 주장의 책임감은 더욱 막중해진다. 매주 토요일마다 훈련이 있지만 팀 연습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있다. "주말에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스마트폰을 만지는 것보다 운동하는 게 훨씬 좋아요. 코치님들도 저희를 위해 봉사하시는데 주장인 저는 꼭 나와야죠. 시켜주실 때까지 주장 역할도 하고 나오지 말라고 해도 여기서 계속 야구를 하고 싶어요."

성민 군은 다문화야구단 내에서 통역사 역할도 맡고 있다. 어머니한테서 배운 중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기 때문이다. 성민 군은 이달 말 예정되어 있는 중국 유소년팀과의 교류전에서 다문화야구단 통역사로 활약할 예정이다. 다문화야구단에는 성민 군 외에도 어머니 나라의 말(言)에 능통한 아이들이 여러 명 있다. 학부모들도 적극적으로 야구단을 돕는다. 지난해 일본대회가 있을 당시 김현우(15) 군의 어머니가 일본어 통역사로 봉사했다.

다문화야구단과 한성태권도 야구팀이 4일 친선경기를 가진 후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이채근 기자
다문화야구단과 한성태권도 야구팀이 4일 친선경기를 가진 후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이채근 기자

◆새로운 목표

최근 다문화야구단은 여러 학교 야구부와의 친선 경기를 통해 막강한 실력을 뽐냈다. 창단할 당시만 해도 수년 내 1승을 목표로 내걸었지만 이제는 어떤 유소년 야구부와 붙어도 밀리지 않는 실력을 갖추었다. 백 사무국장은 "우리 팀은 연습 위주로 훈련하는 야구부보다 시합을 자주 가지는 편이라 게임에 강한 편이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즐겁게 운동하니까 결과도 좋은 것 같아요"라고 했다. 올해 초 단체복도 없이 시합에 나가는 사실이 알려져 이승엽 야구장학재단으로부터 유니폼 후원을 약속받기도 했다.

다문화야구단은 최근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대외적으로 이름을 알리고 프로 선수를 배출하는 것도 좋지만 초심을 유지하려 한다. 다문화야구단은 다음 목표는 야구뿐만 아니라 풋살 등 다양한 스포츠팀과 협업하는 것이다. 야구와 마찬가지로 운동을 하고 싶지만 경제적인 여력이 안 되는 아이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협동심을 기르며 자랄 수 있도록 지도하기 위함이다. 가능하면 사춘기 시절 감수성이 더욱 예민한 여학생이 참여할 수 있는 운동을 늘리려 한다.

또 하나의 계획은 현재 야구단을 세분화해 클럽팀과 엘리트 팀을 운영하는 것이다. 다문화야구단에는 실력이 상당한데 경제적인 형편 때문에 학교 야구부에 입단하지 못하는 선수도 있다. 다문화야구단 코치진들은 "야구를 즐기는 아이들과는 별도로 선수가 되고 싶은 아이들은 그룹을 나누어 집중 관리를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문화야구단 김영조 회장은 최근 프로야구팀에 중국 조선족 출신 프로 선수가 나온 것처럼 다문화 가정 선수가 나올 거라 기대하고 있다. 김 회장은 "다문화야구단에는 노력이나 기량 면에서 뛰어난 아이들이 여럿 됩니다. 더 많은 기대주가 꿈을 키울 수 있도록 다문화야구단은 문을 열어 놓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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