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창] 미국과 '천황'

트럼프와 10번이나 만남 가진 아베
최고 동맹 美英 능가하는 美日 관계
美 업고 김정은과 회담 제안하는 日
비핵화보다 자국 이익 좇을까 우려

이성환 계명대 일본학전공 교수/국경연구소장
이성환 계명대 일본학전공 교수/국경연구소장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자 가장 먼저 달려갔다. 지금까지 10번이나 만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5월 25일 국빈방문, 6월 28일 G20 정상회의로 일본에 온다. 그럼에도 아베 총리는 지난 4월 26일 미국을 방문했다. 트럼프 대통령 부인 멜라니아 여사의 생일 축하를 위해서였다.

미국 ABC방송은 트럼프는 협상의 기술자이지만, 아베는 한 수 위 아첨의 달인이라 평했다. 일본 언론은 양국의 친밀함이라고 했다. 아베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친분을 외교의 최우선으로 삼고 그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도 했다. 5월 말 트럼프 대통령은 나루히토 천황(일본 왕의 고유명사)의 즉위를 축하하는 첫 국빈이다. 아베가 멜라니아 여사의 생일 파티에 참석한 데 대한 답방 격이다. 지금 미일 관계는 전통적으로 최고의 동맹이라 평가받는 미국과 영국의 관계를 능가한다.

불과 70년 전 미국과 일본은 서로를 귀축(鬼畜·아귀와 축생)이라 비난했다. 일본은 미국 영토를 공격한 최초의 국가이며 자살특공대로 결사 항전했다. 미국은 원자폭탄으로 응수했다. 일본 국민은 천황 수호를 위해 옥쇄를 다짐했다. 자기 목숨보다 천황이 소중했다.
8월 9일 소련(현 러시아)이 참전했다. 천황도 군부도 항복을 택했다. 원자폭탄보다 소련이 더 무서웠다. 공산 국가 소련이 점령하면 봉건제의 잔재인 천황제는 소멸하기 때문이다. 당시까지(지금도) 일본은 천황의 나라, 즉 황국(皇國)이었다. 일본의 군대가 아니라 천황의 군대(皇軍)이며, 국민이 아니라 적자(赤子·왕의 사랑을 받는 갓난아이)이며, 일본 만세가 아니라 천황 만세였다. 소련이 상륙하기 전 미국에 항복하는 것이 천황을 지키는 길이었다.

일본 정부는 국영매춘소(특수위안시설)를 설치하고, 미군의 상륙을 환영했다. 어제의 적을 해방군으로 맞았다. 마지막 저항을 우려했던 맥아더는 혼란스러웠다. 맥아더 상륙 약 한 달 후 천황은 그를 찾았다. 늠름한 맥아더 옆에 서 있는 왜소한 천황의 모습이 당시 미국과 일본을 상징했다.

연합국은 천황을 전범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했다. 맥아더는 비무장과 상징천황제로 연합국의 분노를 달랬다. 그리고 아시아에 대한 공산 세력의 팽창을 막기 위한 방파제로 천황의 나라 일본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렇게 천황제는 살아남았으며, 일본은 미국에 항복한 목적을 달성했다. 맥아더는 귀국 후 상원 공청회에서 일본을 '12살의 교육 가능한 소년'이라고 했다. 소년은 미국의 보호 속에 1969년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항복 이후 일본은 미국에 한 번도 각을 세우지 않았다. 각을 세우면 정권이 붕괴한다는 설도 있다. 여기에 가장 충실한 정치인이 아베 총리이다. 문명충돌론으로 유명한 새뮤얼 헌팅턴은 일본의 미국 의존성을 강자에의 편승으로 설명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가장 강한 미국, 중국, 러시아와 전쟁을 한 나라는 일본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생존 전략일까, 천황을 지켜준 고마움 때문일까.

2012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천황의 사죄 요구 발언 이후 한일관계는 회복 불능의 늪에 빠진 듯하다. 일본이 겉으로는 독도 문제를 내세우나, 천황 사죄 발언이 훨씬 충격이었다고 한다. 천황의 사죄를 요구할 만큼 국력이 커진 한국의 존재감에 대한 시의심(猜疑心)도 작용했다.

천황이 바뀌었으니 한일 관계에도 변화가 올까. 지금 미일 관계와 한일 관계는 대조적이다. 문제는 미일 관계가 한반도 정세와 한미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친분을 배경으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회담을 제안하고 있다. 비핵화보다 일본인 납치자 문제가 앞서 가는 것은 아닐까. 지금의 한일 관계가 우려스러운 이유이다. 게다가 G20에서의 한일 정상회담도, 트럼프의 한국 방문도 미정이다.

계명대 일본학전공 교수/국경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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