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월의 흔적(24) ]도시락

난로위에 차곡차곡 쌓아 둔 도시락.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난로위에 차곡차곡 쌓아 둔 도시락.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생각난다. 그 시절이 생각난다. 벌써 60여 년 저쪽의 일이 되었다. 6․25전쟁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 책가방 안에는 책과 도시락이 들어있었다. 조금은 무겁게 느껴졌던 책가방, 그것을 들고 학교까지 십리가 조금 넘는 길을 걸어 다녔다. 거리에 나서면 학교에 가는 학생들이 길게 줄을 이었다.

학생이 교과서를 가지고 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또한 도시락을 가지고 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도시락을 못 가지고 가는 아이들도 있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점심을 건너뛰는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점심시간이 되면 나무 그늘 아래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때로는 아이들이 자기의 도시락에서 조금씩 덜어 내어 그들과 함께 점심을 먹기도 하였지만.

가까운 친구 가운데 밥그릇에다 밀가루 음식을 담아오는 아이도 있었다. 그 아이는 두 시간 정도 수업이 끝나면 슬그머니 밖으로 나갔다. 구석진 곳에서 가져온 음식으로 아침 겸 점심을 때웠다. 우연히 그 아이의 집안 사정을 알게 되었다. 하루는 수업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그의 집까지 함께 갔었는데, 언덕바지에 있는 빈민촌에서 살고 있었다. 그 같은 사정을 다른 아이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겨울철이 되면 아이들은 도시락을 난로 위에 차곡차곡 쌓았다. 그날의 당번을 정해서 아래위의 것을 바꾸어 놓았고, 점심시간이 되면 손에 쥐고 흔들어서 따뜻하게 데워진 밥을 먹었다. 책상을 중심으로 둘러앉아서 반찬을 다 같이 먹으며 정을 나누었다. 그런가 하면 구내식당으로 가서 우동국물이나 짜장 볶은 것을 사서 별미처럼 먹기도 하였다. 얼마 되지 않는 버스비를 아껴서 마련한 용돈으로.

도시락에 얽힌 웃지 못 할 이야기도 있다. 도시락 반찬으로 장아찌나 단무지 또는 콩 조림 같은 게 주류를 이루었지만, 때로는 계란부침 같은 것도 있었다. 그런 날은 다들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런가 하면 김치 같은 반찬을 가지고 오는 날이면 시큼한 냄새로 해서 코를 막기도, 국물이 흘러서 책을 버리기도 하였다. 험난한 세월의 강을 건너온 사람이 겪은 옛이야기다.

세월이 흘러 직장인이 되었다. 도시락을 들고 다니는 것을 탐탁찮게 여겼다. 때로는 찹쌀떡 같은 대용식으로 한 끼를 때우기도 하였다. 넉넉잖은 살림에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는 게 마땅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기피하였다. 직장에서 도시락을 먹을 수 있는 마땅한 장소가 없었고, 동료들의 따가운 눈총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이야 웬만한 직장에는 구내식당이나 휴식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도시락 배달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도 있다. 참 편리한 세상이다.

김 종 욱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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