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북한 들여다보기] 평양택시

허영철 공감씨즈대표
허영철 공감씨즈대표

대북 사업가들의 평양 방문 동선을 재구성하면 보통 2개의 루트가 나온다. 첫째는 베이징 공항에서 평양 순안공항까지 가는 고려항공 여객기를 이용하는 것이고, 둘째는 평양행 철도가 연결된 단둥을 통해 평양으로 들어가는 방법이다.

이 가운데 고려항공을 통한 방문은 주로 북경 쪽의 사업가들과 유럽인들이 이용하는 북한 입국 루트라고 보면 된다. 단둥에서 만난 대북 사업가들은 대부분 철도를 이용해 북한으로 들어간다.

북한으로 향하는 열차는 오전 10시 단둥역을 출발한다. 미리 도착해 단둥세관의 검사를 거쳐 출국 수속을 받고 출발한 기차는 단둥역 인근 압록강 철교를 넘어 북한 신의주역에 도착해 또 한 번 세관의 검사와 입국 신고를 거친다. 이 과정에는 무려 2시간 반 정도가 소요된다.

이후 오후 1시 조금 못 미쳐 신의주역을 출발한 기차는 평양을 향해 달린다. 신의주에서 평양까지는 약 230㎞, 한국의 고속철도라면 동대구역에서 천안아산역까지 정도의 거리이다. 정차 역들을 고려해도 1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반면 일반적인 북한 열차의 운행 속도는 시속 40㎞에 불과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탄 특별 열차는 60~80㎞로 운행되지만 그 열차를 제외한 대부분의 일반 열차는 북한 철도 시설 낙후에 따라 느리게 운행한다.

그래서 오후 1시경 신의주를 출발한 열차는 기차역 폭발 사건이 있었던 룡천을 지나, 우리에게 익숙한 평북 정주에 이르고, 또 안주를 거치고, 북한의 과학기술자들을 양성하는 최고의 대학인 평성이과대학이 있는 평성시를 거쳐, 평양역에 저녁 6시 반쯤 도착한다.

평양에 도착한 대북 사업가들은 이곳에서 북한 담당자를 만나 함께 숙소로 이동하거나 바로 회의 장소로 이동하게 되는데, 최근에는 평양역에 북한 담당자가 나오지 않고 대북 사업가들이 각자 택시를 타고 호텔 숙소로 이동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 때 특별 수행원으로 평양을 다녀온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의 경우도 숙소인 고려호텔에서 평양역과 대동강을 다녀오겠다고 했을 때 아무도 제지하지 않아 택시를 타고 다녀왔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평양에서 택시를 이용한 방문객들에 따르면 평양역에서 택시를 타고 호텔로 향하는데 평양 택시의 기본요금은 2달러라고 한다. 평양역에서 가까운 고려호텔이나 창광산호텔까지는 기본요금이면 갈 수 있고, 조금 먼 청련호텔이나 양각도호텔은 4달러 정도를 지불해야 한다고 한다.

2013년 3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의 보도에 따르면 평양시 내 택시는 400여 대가 운행 중이었다. 하지만 최근인 2019년 2월호 위클리공감 북한 전문가 인터뷰에 따르면 6, 7곳 사업소 단위로 총 8천~1만 대의 택시를 운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 증가 속도가 놀랍다.

이에 따라 평양 중심가인 창전거리와 만수대거리가 만나는 네거리를 비롯해 주요 거리에서는 출퇴근 시간 교통 체증이 심해졌다. 대신 북한 거리의 명물이었던 여자 안내원의 네거리 수신호가 차츰 사라지고 신호등 시설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평양 택시를 통해서도 우리는 북한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작은 변화를 통해 시장경제로 내딛는 북한 사회의 변화 징후를 알 수 있다. 요즘 북한에서 택시기사가 되는 것은 북한 남성 주민들의 꿈이라고 한다. 그만큼 수입이 좋다는 뜻이다.

이런 북한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작은 변화들이 거대한 변화로 이어지는 그 임계치 시점이 바로 북한이 틀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오는 그날이 될 것이다. 북한이 변화의 임계점에 더 빨리 도달할 수 있게 만드는 북미 회담의 조속한 재개와 그 회담의 성과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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