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임고면 우황리에 가면 포은 정몽주 선생의 고향이라고 적혀 있는 팻말이 있다. 포항시 남구 오천읍 사람들은 그곳이 포은 선생의 고향이라고 한다. 원조 국밥집 싸움과 흡사하다. 대구 따로 국밥집 원조가 '벙글벙글'이다, '진고개 식당'이다. 아니다 '실비 식당'이다며 서로가 원조 타령을 한다. 중앙통 네거리에 오면 계네들은 다 짝퉁들이고 '국일 따로', '대구 따로', '교동 따로'야 말로 진짜다. 우리끼리 진검승부를 해야 된다고 기염을 토한다. '
남귀여가혼(男歸女家婚')이라는 말이 있다. 옛날에는 애를 친정에 가서 출산한 뒤 좀 키우다가 시댁으로 돌아오던 풍습을 일컫는 말이다. 포은 선생은 포항시 남구 오천 사람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이나 '포은문집', '연보고이'를 보면 포은은 1337년 외가인 영천 임고면 우항리에서 출생하고 고향 오천으로 잠시 돌아갔다가 다시 영천 외가로 돌아와 살았다고 되어있다. 양쪽이 서로가 고향이라고 불러도 무리가 없겠는데 영천이 선점하여 영천이 고향인 것으로 사람들은 알게 되었다.
목화 이야기도 비슷하다. 삼우당 문익점 선생이 1363년(공민 왕때)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가져와 경남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에서 그의 장인 정천익과 함께 시배를 하였다. 그러나 남평 문씨네들은 경북 의성군 금성면 제오리가 목화시배지라고 주장한다. 삼우당 선생의 손자 문승로 선생(조선 태종 때)이 금성면에서 현령으로 근무할 때 목화씨를 뿌려 재배에 성공하였다는 것이다. 산청 시배는 첫해는 단 한그루가 살아나고 그 후 3년 동안 애를 먹으며 목화재배를 시도하였다는 기록을 보면 금성면 시배지 주장도 영 엉뚱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새마을 운동 발상지도 시비가 있다. 대체로 경북 청도군 신도1리가 발생지로 굳혀져 있는데 포항시 북구 기계면 문성동 사람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실제로 기계면에 가면 그곳에도 기념관을 만들고 발상지임을 주장하는데 들어 보면 별로 억지스럽지 않다.
1969년 8월 4일 박 대통령이 경남의 수해지역을 현장시찰 갔다 오던 중 청도를 지나게 되었는데 그 마을에서 스스로 지붕도 개량하고 담장도 정리하고 마을길도 넓히며 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여기서 박 대통령의 새마을 운동의 아이디어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1971년 9월 박대통령이 전국 시·군수 '비교행정회의'를 하고 귀경길에 기계면에 들려 동네를 시찰한 뒤 이 마을 사람들이 자조, 자립, 협동하며 사는데 이 것이 내가 구상하고 있는 새마을 운동 정신의 원형이라고 지적해주었다고 한다.
1972년 4월 21일 새마을의 노래가 발표되었다. 처음에는 박정희 대통령 작사, 작곡으로 알려졌으나 작곡은 박대통령의 둘째 딸 근령(서울음대 작곡과 졸업)이 하였다는 학설도 있다. 새마을 노래는 새마을 운동의 배경음악이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 푸른 동산 만들어/ 알뜰살뜰 다듬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서로서로 도와서 땀 흘려서 일하고 소득증대 힘써서/부자 마을 만드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우리 모두 굳세게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워서/ 새 조국을 만드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박정희 대통령은 생전 두 곡을 작곡하였는데 또 하나의 노래는 '나의 조국'이다. 우리 오천년 역사 이래 이 나라를 처음으로 반석 위에 올린 지도자, 문무를 겸비한 매력적인 독재자였다.
전 대구적십자 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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