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경철이 만난 사람] 남문기 뉴스타부동산그룹 회장

남문기 뉴스타부동산그룹 회장. 사진 이무성 객원기자
남문기 뉴스타부동산그룹 회장. 사진 이무성 객원기자

'헬조선'은 사전에 올라가 있는 단어다. 지옥을 의미하는 '헬(hell)'과 우리나라를 의미하는 '조선'을 결합해 만든 말. 열심히 노력해도 살기가 어려운 한국 사회를 부정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뜻풀이가 나와 있다.

미국 LA에 본사를 둔 부동산회사인 뉴스타부동산 그룹 남문기(66) 회장. 의성 출신인 그는 왜 이런 말이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생각을 거머쥐고 있는 있는지, 왜 젊은이들이 이 단어에 자신의 삶을 던져놓고 있는지, 너무나 안타까워하는 사람이다.

"아메리칸 드림이 없다고요? 하기 나름입니다. 우리 회사 이름처럼 스타가 되는 길이 아직도 열려 있습니다."

'좋은 직장'이었던 은행원(퇴사 당시 주택은행 서울 자양동지점 직원)을 그만둔 뒤 300달러를 쥐고 1982년 미국 LA로 떠났던 남 회장은 미국 전역에 지사망을 갖춘 초대형 부동산그룹을 일궈냈다. 3명의 직원으로 출발했던 뉴스타그룹은 한때 직원이 2천명이 넘었고 지금도 1천여명의 직원이 근무 중이다.

어버이날이었던 지난 8일, 서울 건국대 인근의 한 호텔에서 만난 김 회장은 말쑥한 양복 차림으로 나왔다. 양복 상의에는 'Attitude'라고 새겨진 배지가 있었다. 그의 사업 철학, 아니 삶의 철학이 녹아있는 단어라고 그는 소개했다.

-Attitude는 우리말로 태도라는 뜻인데, 회사 사명인 뉴스타를 달고 다녀야되는 것 아닌가? 회사 사명도 아닌 그 단어를 왜 배지로 달고 다니나?

▶이 단어는 나에게 매우 소중하다. 태도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의미다. 태도가 인생 성공의 길을 만든다. 옷차림부터 뭔가 달라야 성공할 수 있다. 옷 매무새부터 제대로 꾸밀 수 있는 태도를 갖춰야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바로 그 태도가 생각으로, 그리고 행동으로 연결된다. 태도가 좋은 사람이 비즈니스를 잘하고 고객들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태도를 강조하고 좋은 태도가 몸에 배도록 직원들에게 항상 교육한다. Attitude 배지도 있지만 나는 '팀 플레이어(Team player)'라는 배지도 즐겨 착용한다. 태도 다음으로 챙겨야하는 것이 팀 플레이다. 세상에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있나? 인생은 팀을 이뤄 살아가는 것이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혼자 잘 살 수는 없다. 같이 가야한다. 같이 가자는 철학으로 나는 사업을 해왔다. 나 혼자 돈 벌어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 모두 함께 스타가 돼 좋은 대우를 받아보자고 나는 항상 얘기해왔다. 그러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 4년제 대학(그는 건국대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나오고 1980년대 초반에 주택은행(지금은 국민은행으로 통합) 취업했으면 한국에서도 성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이다. 건국대 주변에 있는 주택은행 자양동지점에 근무했다. 그러나 더 큰 꿈을 키우고 싶었다. 좋은 직장에 만족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세상을 보고 싶었다. 미국 간 이유는 공부를 하기 위해서였다. 결혼까지 했지만 도전해보고 싶었다. 아내가 홍콩의 항공사인 캐세이퍼시픽 직원 출신이다. 아내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구체적 계획도 없었지만 300달러를 챙겨들고 LA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 미국에 가서 곧바로 부동산업에 뛰어들었나?

▶미국에 간 첫번째 목적이 공부였기 때문에 공부부터 시작했다. 도서관을 다니며 공부를 시작했는데 우연히 청소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을 알게됐다. 함께 일하자는 권유까지 받았다. '해보자'고 결심했다. 결심이 서니 내 특유의 돌파력이 나타났다. 뭐든지 밀어붙였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한테 이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청소 회사가 특히 그랬다. 낮밤 없이 일하고 휴일까지 일하는 데 좋은 결과가 안 나올 수 없었다. 직원이 달랑 3명 뿐이었던 회사에 들어가 4년만에 30배 가량 회사 규모를 키워줬다.

- 너무 열심히 일했던 것 아닌가? 몸이 견뎌냈는가?

▶간암 수술을 여러 번 받았다. 과로를 했을 것이다. 미국에서 일하면서 잠자는 시간을 최대한 줄였다. 하루 평균 4, 5시간 이상을 자지 않았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 정신이 할 수 있다고 판단하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일념으로 살아왔다.

- 청소 회사에서 일하다 부동산업으로 눈을 돌린 이유는 뭔가?

▶처음부터 청소를 계속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미국 사회에서 직업을 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여러 직업을 놓고 고민하다 부동산업을 시작하게됐다. 1988년 LA에서 직원 3명으로 시작했다. 청소업에서 성실하게 일했던 것처럼 부동산업에서도 성실한 영업방침을 기본으로 했다. 한번에 큰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다. 나는 다다익선 전략으로 사업을 했다.

큰 거래가 반드시 큰 돈을 벌어다주는 것이 아니다. 작은 집을 거래하는 비즈니스에 최선을 다해 만족스런 거래를 만들어줬다. 그러다보니 처음부터 영업이 잘됐다. 주택거래에서 신뢰가 쌓이니 더 큰 규모의 사업체와 상업용 빌딩 거래에까지 영업 범외가 넓어졌다. 2005년 무렵에는 직원이 2천명까지 불어났다. 확장적 영업전략을 쓰지는 않지만 지금도 1천여명 가량을 유지하고 있다.

- 미국에서 한국 사람이 사업을 하는 데 어려움은 없나? 미국은 아메리칸 드림의 나라가 맞다고 생각하는가?

▶미국에 오면 언어와 문화장벽에 부딪히게 된다. 당연한 것 아닌가? 우리나라가 아니니까 말도 다르고 문화도 차이를 느낀다. 그런데 이게 차별은 아니지 않는가? 나는 그렇게 본다. 말 다르고, 문화가 다르다고 차별을 느끼면 해외로 나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미국 사회는 생각보다 차별이 없다. 노력한만큼 받아갈 수 있는 사회다.

- 한국에서는 부동산 전문업체 가운데 대형업체가 많지 않은데 미국에서는 어떻게 대형화를 이루고 큰 비즈니스 모델로 성장시킬 수 있었나?

▶한국과 미국이 다른 점은 프로를 프로로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있느냐 여부다. 미국 LA에서는 주택거래를 할 때 부동산 에이전트 수수료율을 6%로 매긴다. 사업체 거래에서는 10%다. 미국 뿐만 아니다. 선진국 대다수가 그렇다. 판매자와 구매자를 연결해주면서 양자가 다 최대한의 혜택을 볼 수 있도록 중개를 잘 했다는 의미에서 수수료를 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수수료율이 너무 낮다. 우리나라 정책은 잘못됐다. 거래 당사자가 받아가는 이득만큼 에이전트에게 줘야한다. 그래야 더 좋은 거래가 만들어지고 혜택을 보는 이들이 늘어난다. 한국도 이제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큰 부동산 거래가 생길텐데 이런식으로 제도를 만들어놔서는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다.

해외로부터 오는 투자를 늘리기 위해서라도 한국의 정책을 이른 시일내에 손봐야한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은 아직도 어떤 거래를 할 때 학연이나 지연에 얽매이는데 이 부분은 고쳐져야한다. 전문가에게 맡겨야 더 많은 이득을 볼 수 있고, 전문가 집단이 자라나는 토양을 갖추게된다.

-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부실 사태로 초래됐는데 그 때 큰 타격이 없었나?

▶나는 주로 한국인들의 거래를 많이 해줬는데 한국인들은 고이자율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당시에 아무런 타격도 없었다. 신용이 낮은데도 무리하게 높은 이자의 융자를 쓰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가 왔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은 망하게돼있는 구조의 대출상품이다. 다다익선이 내 사업전략이라고 했듯이 사업을 하면서 위험이 높은 거래는 하지 않아야된다. 적게 남아도 안전하게 가는 것이 성공하는 길이다.

- 1980년대 초반에 미국으로 갔다. 아직도 미국은 꿈을 이룰 수 있는 사회인가?

▶LA에 우리 교포가 100만명 가량 산다. 재외동포들을 잘 아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민을 더 가야한다. 미국은 여전히 열려있는 사회다. 교육도 전세계에서 가장 질높은 수준이다.

그리고 미국 부동산을 사면 좋다고 나는 본다. 미국 전체로 보면 이제 250만명의 동포가 있는데 과거와 달리 전문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고 고급 주택을 소유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미국 사람들도 이제 우리나라 사람들을 대우해주고 있다. 그들이 우리를 인정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 많이 해외로 뻗어나가야한다.

- 미국의 동포 사회는 단합이 잘 되는가?

▶우리 정치가 해외 동포 사회를 이해하고 잘 발전시켜나가야한다. 해외 동포들이 나라 발전을 위해서 더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는데 우리 정치가 이를 잘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해외 동포들이 고국에 더 많은 투자를 한다면 얼마난 좋은 일인가?

해외에 있는 동포들과 고국은 일체감을 갖고 있다. 그 일체감을 투자 등 다른 형태로 구체화할 수 있도록 정치가 역할을 해야한다. 나도 미국에서 그런 역할(그는 해외한민족대표자협의회 의장을 맡고 있고 LA 직선 한인회장, 미주한인회 총연합회 총회장, 미주한인상공인 총연합회 총회장, 세계한인회장대회 의장 등을 역임)을 열심히 하고 있다. 이런 활동을 하는 이유는 동포들이 지금보다 더 잘 살고 미국 사회에서 더 나은 위치를 향유하고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 고향이 의성인데 고향 발전을 위해서도 역할을 하고 있나?

▶모교인 의성중학교에 장학금을 기부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안하고 있다. 조금 실망한 부분이 있었다. 미국과 달리 한국은 기부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 아니 감사하는 마음의 표현이 아쉬울 정도다. 기부를 당연시하면 안된다.

기부는 기부자가 피땀흘려 열심히 노력한 것을 나누는 행위다. 미국은 기부를 대하는 태도가 놀라울 정도다. 2001년 뉴스타장학재단을 만들어 지금까지 1천700여명에게 장학금을 줬다. 재작년에는 모교인 건국대에도 장학금 1억원을 기탁했다. 기본적으로 미국은 돈을 번 곳에서 기부를 하고 돈을 쓰도록 한다. 그것이 문화다.

하지만 8남매 막내로 넉넉하지 못하게 자랐던 내 고향 의성도 잊을 수 없는 곳이다. 고향은 고향이지 않은가? 또다른 기회를 봐서 기부를 하고 싶다. 그런데 내 고향은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이 조금 다른 태도를 보여줬으면 하는 것이 바람이다.

- 고향 생각이 아직도 나는가?

▶고향? 가난했던 어린 시절부터 떠오른다. 엄청난 가뭄으로 큰 흉년이 들었던 1962년 겨울의 기억이 가장 또렷하다. 대학 다니는 형님 자취방 살림을 정리하기 위해 어머니와 형, 내가 고향 읍내에서 난생 처음 기차를 타고 서울 청량리역으로 갔다. 모두가 가난하던 시절 형님이 기차표를 사지 않고 기차에 탔던 모양이다. 청량리역에서 역무원에게 발각됐다. 역무원이 대뜸 형의 따귀를 때렸다. 어린 나는 그 장면이 너무 무서웠다. "역장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시켰습니다. 제가 벌을 받겠습니다. 아들은 죄가 없습니다" 역무원앞에서 죄인처럼 무릎을 꿇고 눈물을 쏟던 어머니의 모습도 선하다. 가난을 모르는 사람은 가난을 아무리 설명해도 모를 것이다.

- 한국에는 자주 오는가? 올때마다 한국이 많이 발전하고 있지 않은가?

▶18일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다. 한국에는 1년에 3, 4번은 나온다. 물론 많이 달라지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서비스 정신이 더욱 강해져야한다. 서비스업종에서마저 서비스 정신이 많이 모자란다. 나도 서비스업을 하고 있지만 서비스를 받고 있다는 기분을 고객이 느껴야한다. 가장 일반적인 서비스업체인 식당에서 얼마나 많은 한국 사람들이 서비스를 받고 있다고 느끼는가? 서비스는 감사의 표시다. 그런데 한국은 감사의 표시가 너무나 많이 모자란다. 그러다보니 서비스 만족도가 떨어진다.

또 한가지 더 지적하자면 한국의 기업들이 직원들을 대하는 태도도 더 바뀌어야한다. 내가 해병대 출신인데 전군의 간부화라는 단어를 쓰면서 우리 회사 에이전트 모두를 간부처럼 되도록, 그런 역량을 갖추도록 주문한다. 우리 회사 이름처럼 '뉴스타'다. 그리고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준다. 그래야 함께 갈 수 있고 더 좋은 조직의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