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이 뜨거운 철에 들어섰다. 봄꽃이 막바지란 신호다. 벚꽃과 유채꽃이 사라지자 철쭉이 피었다. 철쭉이 가면 여름이 온다. '여름'이라 쓰기만 해도 뜨겁다. 남은 봄이 고맙다.
황매산이라고 있다. 온 천지 철쭉인 산이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아 압도되는 곳은 아니나 '천지삐까리'란 말이 과하지 않다.
대구에서 멀지 않은 합천(陜川)이다. 행정구역상 경남일 뿐 광주대구고속도로에 올라 고령을 지나면 바로다. 산이 많아 계곡 물이 좁게 흘러내렸다는 곳이다. 눈을 멀리 던질 것도 없다. 야트막한 언덕도 농사에 썼다. 남해의 명승으로만 알던 다랑논이 합천 들에도 보인다. 자투리땅마다 콩이나 마늘, 대파가 자란다.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네들이 농작물을 뒤적이며 가꾼다. 평화로운 시골마을이다.
봄이면 철쭉으로, 가을이면 억새로 위세를 떨치고 있는 황매산에서 합천호를 내려다본다. 합천의 젖줄 황강이 합천호에서 내려 낙동강으로 유유히 나아간다. 햇살은 황강 고운 모래에 반사돼 축포처럼 터진다. 합천에서 만난 여유로운 늦봄 풍경이다.
◆철쭉빛 효자산, 황매산에서
지도에서 본 합천은 둥그스름한 몸통 위로 머리가 툭 솟아나온 모양이다. 엄지를 치켜세운 주먹처럼 보이기도 한다. 오른손이냐 왼손이냐를 따지면 왼손이다. 페이스북의 '좋아요'를 떠올리면 얼추 맞다. 초등학생도 안다는 합천의 자랑, 해인사를 품은 가야산이 엄지에 있고 철쭉 천지 황매산은 살이 두툼한 손날쯤에 있다.
황매산에 도착하고 보니 '효자산'이란 말이 절로 나온다. 자동차로 해발고도 850미터까지 올라갈 수 있다. 내비게이션에는 '황매산 오토캠핑장'이라 넣는다. 캠핑장에 내리자 불그스름한 기운에 불콰하다. 가까이도 철쭉이고 멀리도 철쭉이다. 연한 보랏빛도 아니고, 핫핑크라 부르기도 애매하다. 온통 철쭉빛이다. 철쭉빛이 파스텔처럼 번져있다.
차에서 내린 곳이 8부 능선이다. 황매평전이다. 철쭉빛에선 생동적인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 슬슬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다. 걷기 힘들다며 해발고도 850미터까지 자동차에서 기어이 버티던 이들이 어느새 걷는다. 공원처럼 잘 꾸며진 평원 주변을 한 바퀴 도는 것으로 모자라 정상까지 오를 기세다. 효자산이자 기적의 산이다.
어르신들이 그렇게나 많았던 데는 이유가 있었다. 정상석이 1108미터에 있으니 260미터만 오르면 정상이다. 등산복 차림으로 오지 않는 이들도 제법 보인다. 백두산 정상에 오를 때 등산복 입은 사람과 안 입은 사람으로 중국인과 한국인을 구별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등산복을 입고 온 사람은 황매산 정상석 인증이라도 할 사람이고 평상복을 입고 온 사람은 철쭉을 보고 내려갈 사람들이었다. 철쭉군락지에서 숨을 헐떡이는 이들은 대개 모산재(767m)를 넘어 온 이들이다. 숨을 고르며 철쭉 풍경에 반하고 다시 정상으로 향하는 등산객이다.
정상석 주변에선 특이한 광경이 연출된다. 21세기 들어 전세계적으로 확산된 인증문화는 남녀냐 노소냐 음식이냐 명소냐를 가리지 않는다. 100년 뒤 세계문화사의 한 줄로 기록될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스마트폰의 등장 → 인증문화 확산 → 정상석 안전 문제 대두 → 안전 의식 고취'라는 요점 정리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정상석 인증샷을 찍기 위해 줄을 서 기다리는 모습을 본다. 성취한 자들의 여유 넘치는 기다림이다. 정상석 봉우리 주변이 좁아 한꺼번에 많은 이들이 오를 수 없어서이기도 했다.
◆양수겸장의 건강법, 발품으로
하늘이 준 만끽의 기회는 내게만 허락된 게 아니다보니 '황매산 오토캠핑장' 주차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철저히 빈자리가 나야 들어가는 시스템이 정착돼 갓길에 대충 세워두면 되는 것도 아니어서 부지런하든지, 체력이 좋든지 둘 중 하나는 갖춰야 한다. 그러니 조금 아래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두고 오르는 게 속도 편해 정신 건강, 신체 건강에 도움이 된다.
오토캠핑장 아래로 걸어서 10분 거리에 주차장이 하나 더 있다. 은행나무주차장이다. 오전 9시 이전에 온다면 오토캠핑장 주차에 도전해볼 수 있다. 어디까지나 평일 기준이다. 덜 걷겠다는 의지만큼 부지런해야 한다.
마음 단단히 먹고 합천산(産) 맑은 공기에 흠뻑 젖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황매산군립공원 매표소 인근 덕만주차장에 차를 대고 3km 정도를 걸어 오르는 코스다. 이것저것 둘러보기 좋아하는 이들은 금탑 2개로 이름 난 법연사를 둘러보고 산행에 나선다.
정 걷는 게 힘들다면 산청 쪽에서 올라오는 방법도 있다. 주차장이 다소 여유 있다. 합천 황매산 철쭉은 옆 동네 산청과 나눈다. '황매산 철쭉제'란 이름으로 산청도 같은 기간에 축제를 열었다. 합천군 가회면과 산청군 차황면 경계에 있는 산이니 당연하다. 누가 원조라느니 악다구니할 것도 아니다. 서로 자기네 것이라며 정상석을 제각기 따로 세우거나 하지 않는다. 올해는 4월 27일부터 5월 13일까지가 축제기간이었다.
이즈음에 주민들의 말을 종합해서 참고할 필요가 있는데 합천 사람들은, 기상이변 등이 없는 경우에 한해 매년 어버이날인 8일을 축으로 사나흘 정도가 철쭉의 절정이라고 알려줬다. 5일부터 11일까지가 절정인 셈이다. 올해는 철쭉의 개화가 늦었다고 한다. 축제기간은 행정기관이 연초에 정하지만 꽃이 피어나는 건 제 맘이다. 기사가 게재될 16일 전후로도 철쭉은 절정일 것이다.
◆바위산에 스민 봄, 모산재에서
바위 암릉에도 봄은 스몄다. 철쭉에 취해 오르는 꽃산인 줄 알았더니 조각품이 널린 바위산이기도 했다. 바위 조각 전시장이라 해도 손색없는 모산재 길이다.
모산재로 오르내리는 길은 급경사다. 급한 만큼 움직일 거리가 짧다. 무엇보다 산악 어드벤처를 조금이나마 즐기고 싶다면 단연코 모산재를 거쳐야 한다. 돛대바위, 순결바위, 득도바위 등 기암이 지루할 성싶으면 나타난다.
모산재 정상에서 황매산을 향해 보니 도드라진 황매삼봉이다. 3명의 현인이 난다는 전설이다. 무학대사와 남명 조식이 꼽힌다. 1980년대 잠시 3명이 다 배출됐다고 했지만 지금은 2명이다. 미래 동량을 위해 끝까지 채워지지 않을 한 자리다. 3명의 인물이 나는데 그 주인공이 당신일 수 있다는 풀이법이 정석이다. 고향땅의 돈 안 드는 격려다.
모산재 아래로 한참 내려가면 사적으로 지정된 옛 절터가 있다. 영암사지다. 영암사라는 사찰은 없고 터만 남았다. 황매산 남쪽 기슭에 있던 통일신라 사찰은 유물만 남겨놨다. 비교적 원형 그대로인 삼층석탑은 물론이고 금당터 앞 돌계단과 쌍사자석등에 세월의 흔적이 진하게 묻어있다. 기단과 계단, 주춧돌이 당시 모습을 그릴 수 있게 돕는다.
영암사가 남아있었다면 분명 국보급 절경이었을 거라 짐작한다. 기암 봉우리가 절터 뒤를 병풍처럼 둘러치고 있다. 흡사 청송 주왕산 대전사 뒤 기암에 비견될 풍경이다. 어디까지나 상상이지만 아쉽고 또 아쉽다.
◆합천의 젖줄, 고운 모래 황강에서
합천(陜川)은 땅이름의 '합'으로도, 좁다는 뜻의 '협'으로도 읽히는 한자 '陜'이 들어간 지명을 쓴다. '좁은 내'라는 뜻으로 산에 둘러싸인 좁은 계곡이 많아서 붙은 이름이라 풀이한다. 좁은 계곡 탓인지 1989년에는 댐도 들어섰다.
댐이 만든 합천호가 심장처럼 합천의 중앙에 버티고 있다. 합천호에서 내린 황강은 낙동강과 합치기까지 구불구불 합천 땅을 적신다. 합천은 남북으로 양분할 수 있는데 황강이 기준이다. 남쪽 대표 절경이 황매산이면, 북쪽은 해인사를 품은 가야산이다.
평지는 모두 논이나 밭으로 써야할 만큼 척박했던 합천 땅에서 황강은 축복이었다. 교가나 군민헌장 등에 자연지형으로 등장하는 것들이 그 지역 대표 지형·지물이라 할 적에 합천은 황강(黃江)을 꼽는다.
누런 모래, 가까이서 보면 하얗기까지 한 모래가 그렇게 곱다. 합천 사람들은 "아무리 고운체로 친다 해도 황강 모래만큼 곱고 빛나는 모래를 얻을 수 없을 거"라고 했다. 은모래 내성천이라 부르던 예천 사람들의 내성천 사랑에 버금간다. 같은 '황(黃)'을 쓰지만 중국 황하와 다르다. 황토 퇴적물로 탁도 높은 황하와 누런 모래 바닥을 보여줄 만큼 탁도 낮은 황강의 차이다. 산골짜기를 거쳐 필터링이 충분히 된 물이 내려왔으니 맑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대야성의 죽죽장군, 함벽루에서
회사 중역들이 노래방 회식에 굳이 가서 부르는 노래는 거의가 그의 20대 시절 노래다. 4분 안팎의 노래를 부르는 동안 자신의 한창 때로 잠시나마 돌아가는 착각을 하게 되는데 머리 희끗희끗한 간부가 첫사랑 노래에 소울을 실어 기가 막히게 부르는 이유다. 노래엔 죄가 없다. 그 시절을 그리워해 딸려 온 촉매제다. 이런 선곡의 역사는 반복될 게 뻔하다. 지금 20대가 30년 뒤면 '꼰대'라 경멸하던 이들과 비슷한 자세로 노래할 것이라 단정할 만큼.
합천이 기억하는 역사적 인물 중에 '죽죽장군'이 있다. '대야성'이라는 지명도 딸려 온다. 대구가 달구벌이던 시절보다 오래된, 삼국시대 지명이다. 무려 1300년 전 기억이다. 합천은 대야성이란 이름을 즐겨 썼다. 대야성은 신라와 백제의 다툼이 한창이던 640년대 요충지였다. 합천에는 야로라는 지명도 있다. 가야의 용광로가 있던 곳이다. 합천은 가야의 땅이었다가 신라의 땅이다가 백제 소유로 있다가 다시 신라로 왔던 격전지였다.
황강변에 함벽루라는 정자가 있다. 황강을 내려다 보는 곳이다. 정자 바로 뒤로 대야성의 흔적이 남아있다. 안내판을 보니 김춘추의 사위, 대야성 도독이던 김품석의 이름이 등장한다. 김품석은 백제에 맞서 싸우지 못했다. 부하 검일의 아내를 빼앗은 뒤 민심이 흉흉해진 탓에 누구도 나서 싸우려하지 않아서였다. 그 와중에도 죽죽장군은 끝까지 싸우다 전사했으니 어떤 상황에서도 충성을 다한 장수의 표본으로 남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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