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쌍탑의 기원을 삼국 통일(676년) 이전으로 추정할 수 있는 쌍탑 목탑터가 경주 황복사 터에서 발견됐다. 지금껏 신라 쌍탑의 시원은 679년 창건한 사천왕사로 알려져 왔다.
황복사지를 3차 발굴 중인 성림문화재연구원은 "사적 제163호 경주 낭산 일대에 있는 황복사 추정 부지에서 한 변이 6m인 정사각형 목탑터 2곳을 발견했다"고 15일 밝혔다.
성림문화재연구원에 따르면 탑지의 평면 배치와 형태로 볼 때 목탑지로 추정된다. 목탑은 띠 모양 기초 위에 원형 적심(주춧돌 위에 쌓는 돌무더기)과 초석을 올린 형태다. 절터에 남아있는 황복사지 삼층석탑(국보 제37호)은 효소왕 1년인 692년에 세웠다고 하는데, 그 전에 목탑을 올렸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게 연구원 측의 분석이다.
연구원은 이번 조사에서 사찰 중심 건물인 금당지와 탑지 2곳, 중문터가 남북 방향으로 이어지게 배치된 사실도 확인했다. 사찰을 처음 조성한 시기는 중문터 적심과 단각고배(짧은다리굽다리접시), 연꽃무늬 수막새를 근거로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사이로 보인다고 연구원은 설명했다. 목탑터가 맞다면 신라 쌍탑의 시작 연대가 삼국통일 이전 옛 신라 때로 올라갈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논란도 예상된다. 탑지 규모가 작은 데다 주변에 비각(碑閣)이 있고 중문지와 가까이 있다는 근거를 들어 창건 이후 축조된 종묘와 관련된 제단일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나오기 때문이다.
황복사는 '삼국유사'에 654년 의상대사(625~702)가 29세에 출가했다고 기록된 절이다. 1942년 황복사지 삼층석탑을 해체 수리할 때 나온 사리함에서 확인된 '종묘성령선원가람'(宗廟聖靈禪院伽藍) 명문을 통해 종묘의 기능을 한 왕실사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연구원은 2016년부터 황복사지를 발굴조사하고 있다. 2016년 1차 조사에선 제34대 효성왕(737~742)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위한 미완성 왕릉, 건물지, 남북도로 등을 확인했다. 2017년 2차 발굴에선 통일신라 시대 십이지신상 기단 건물지, 대석단 기단 건물지와 부속 건물지, 회랑·담장·배수로·연못 등 신라 왕실사원임을 추정할 수 있는 대규모 유구 및 금동불상 등 700여 점의 유물이 나왔다.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