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철강업계 "블리더는 안전장치…무단배출용 아냐"

수십년간 운영한 블리더…"환경당국 미세먼지 때문에 문제 삼아"
포항제철소 조업정지 처분 나오면 행정소송으로 대응 전망

포항제철소가 수십년간 대기오염물질을 무단으로 배출해온 정황이 드러나 환경당국으로부터 조업정지의 행정처분을 받을 상황에 놓였다. 포항제철소 전경. 매일신문 DB
포항제철소가 수십년간 대기오염물질을 무단으로 배출해온 정황이 드러나 환경당국으로부터 조업정지의 행정처분을 받을 상황에 놓였다. 포항제철소 전경. 매일신문 DB

경북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포스코 포항제철소가 조업정지의 위기에 처했다. 포항제철소가 조업정지 10일 처분만 받더라도 사전준비와 재가동에 수개월이 걸릴 수 있어 지역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포스코 측은 환경당국이 수십년간 문제 삼지 않던 것을 갑자기 위법으로 규정해 난감한 입장이다.

이에 환경당국의 입장 변화의 이유와 앞으로 전개될 사태의 추이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환경당국 입장, 미세먼지가 바꿨나

환경당국이 제철소 고로의 블리더(탱크 등에 공기가 드나들도록 하는 장치) 운영을 위법으로 본 배경에는 올해 초 불거진 전국적인 미세먼지 사태가 영향을 준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철강업계는 '제철소 고로의 블리더가 오염물질을 몰래 배출하기 위한 통로가 아니라 고로 폭발 등 위험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허가를 받고 설치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러한 사실은 환경당국 역시 알고 있었으나 세계에서 운영 중인 모든 제철소가 같은 상황이어서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올해 초 전국적인 미세먼지 사태가 국면 전환의 단초가 됐다. 포항제철소와 같은 대형 대기오염물질 배출시설이 미세먼지 감축에 가장 앞장서야 할 상황에서 국내 제철소들이 다량의 오염물질을 전혀 거르지 않고 그대로 배출하고 있는 사실을 알고도 마냥 묵인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기술 개발이 안 됐다는 이유로 철강업계에만 면책 특권을 줄 근거도 마땅치 않다는 분석이다.

대형 사업장의 오염 행위에 경제 논리로 봐주던 과거와 달리 강력한 행정처분을 내리는 환경당국의 분위기도 반영됐다. 환경부는 최근 하천에 유출되지 않은 폐수무단 배출 사고를 일으킨 봉화 영풍석포제련소에 대해 경북도의 조업정지 처분을 요청하는 등 단호한 입장을 내놓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아연제련소인 영풍제련소 공장도 세우라고 처분한 상황에서 제철소에만 다른 잣대를 들이대기 힘들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경북도는 '전전긍긍'

영풍제련소 추가 조업정지 처분으로 난감한 입장에 놓인 경북도는 포항제철소 조업정지라는 대형 과제까지 겹치자 전전긍긍하고 있다. 전남도와 충남도 등 다른 지자체가 현장 지도점검을 마치고 행정처분 확정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경북도만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고 팔짱만 끼고 있을 수 없는 상황이어서다.

경북도는 조만간 현장 지도점검을 한 뒤 처분 수위를 환경부와 협의해 확정할 계획이지만 이미 조업정지 10일의 행정처분 사전통지를 한 전남·충남도와 다른 처분을 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도의 고민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대기오염물질 무단배출 등에 따른 1차 행정처분이 나가면 추후 개선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2차, 3차 행정처분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3차 행정처분은 곧 영업허가 취소로 사실상 시설 폐쇄를 의미한다.

고로의 블리더에 오염저감시설을 하는 기술이 세계적으로도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1차 처분은 3차 처분으로 갈 '제동 없는 열차'를 출발시키는 것과 다르지 않은 셈이다. 이에 포스코 등 포항제철소 관계자는 지난 9일 경북도청을 찾아 이철우 경북도지사를 접견하며 이 같은 어려움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북도 관계자는 "철강산업의 구조적 한계가 있는 만큼 이번 논란을 계기로 환경부와 철강업계 등이 머리를 맞대고 해결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포스코 행정소송으로 가나

물론 국가기간산업이나 다름없는 제철소가 실제로 영업허가 취소나 조업정지 사태에 놓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경북도가 지도점검 후 조업정지 행정처분을 확정하더라도 포항제철소가 집행정지 신청 및 처분취소 행정소송으로 맞서면 실제 조업정지는 법정 공방 이후에나 이뤄지게 된다. 이는 경북도보다 먼저 논란이 시작된 전남 등 타 지역에서 앞선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고 포항제철소 건도 연계돼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국가기간산업인 철강산업이 조업정지로 입을 경제적 타격을 고려해 현실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여론에 힘이 실릴 수 있다. 블리더를 통해 배출되는 증기에 어떤 오염물질이 있는지 공인할 수 있는 연구와 함께 대기방지시설 설치 기술 개발 등 대책도 뒤따라야 할 과제다.

환경당국이 종합적인 대책도 없이 처벌 위주의 행정을 펼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그에 따른 파장은 지역사회와 해당 기업에 고스란히 전가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제철소 고로 블리더 문제를 알면서도 묵인했다면 공동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해외에서는 정비를 하면서 블리더를 안 열어 고로가 폭발하는 사고가 실제 있었던 것으로 안다"면서 "대기오염물질 배출 방지시설은 블리더 미개방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폭발 위험을 가중시키고 이 때문에 지금까지 기술 개발이 안 된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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