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영동의 시대와 미술]새로운 구상미술의 시작

장석수 작
장석수 작 '파이프를 그린 그림을 들고 있는 소년' 1971

언제부터인가 우리 주위에는 내놓고 담배를 피우는 광경이 사라진 듯하다. 그러나 아직 노상 흡연자들이 흔하게 눈에 띄는 외국에 비하면 우리 풍속이 빠르게 변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장석수 선생은 파이프를 손에 들고 한 모금 연기를 뿜어내는 멋진 사진이 있다. 본인의 수집품으로 보기엔 좀 많지만 수십 종류의 파이프를 모아 둥글게 펴놓은 그림도 있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대에도 개인의 작은 호사 하나쯤 누린다고 누가 탓했으랴마는 선생의 파이프 사랑은 각별했던 듯하다. 앙티미즘 작가들이 주변의 작은 사물에 정을 느끼고 애착 가는 물건들을 곧잘 작품의 소재로 그렸다. 일상 속에 신변잡기를 주제로 삼은 그림들이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지만 장석수 선생의 1971년 작품이 결코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장석수 선생은 1958년부터 대학 강단에 서며 (당시 대구대학에 출강) 서구 현대미술에 관한 지식을 소개하는 글들을 자주 지상에 게재했다. 전시와 작품 논평을 포함해서 동시대 추상미술의 이미지들을 이론적 배경과 함께 해설하는 신문 연재도 많았다. 조선일보 현대미술전에 출품한 그의 작품들은 엥포르멜이라고 부르는 비정형 비대상 추상회화의 전형적인 예다. 그런 작품들의 특징은 어두운 물감 자국과 얼룩 등으로만 구성되어 어떤 다른 형상도 연상시키지 않는다. 야만적인 전쟁이 남긴 깊게 파인 상처들인 양 인간의 실존과 자아의 깊은 성찰에서 비롯된 이미지들이다. 결연하고 비장한 각오로 안이한 일상을 뛰어넘고자 했던 고통이 느껴진다.

화가들은 달콤한 소재 대신 고통스러운 주제를 추구해야 했다. 감각적 즐거움이 그렇게 두려웠던지 신체적 인내가 곧 작업 내용이 되던 시대였다. 힘들게 방법 자체에서 개성적인 독자성을 확보하고 거기서 쉽게 나오려 하지도 않았다. 장석수 선생은 1966년 거의 10년 가까이 그렇게 실험한 결과들을 100호 이상의 대작들로 개인전을 가졌다.

미술사가 뵐플린의 주장이었던가 모든 양식이 모든 시대에 가능하지 않았다. 서구에서는 다시 신구상주의가 일어나고 포스트모던 시대 회화의 복귀가 명백해졌다. 선생은 감각적으로 새로운 시대의 변화를 자각했던지 1970년대가 되면서 전혀 새로운 구상적 작품을 내놓았는데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은 그의 전환은 예술가 특유의 자유나 용기에서 나왔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선생은 새로운 추구의 귀추를 다 드러내기 전 55세의 너무 이른 나이에 타계한 것이 너무 아쉽다.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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