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원정진료'에 대한 단상

최재갑 교수(경북대 치의학전문대학원 구강내과학교실)
최재갑 교수(경북대 치의학전문대학원 구강내과학교실)

"서울에 사는 아들이 자꾸 서울 큰 병원에 와서 진찰을 받아 보라고 해서 한 번 올라가 볼랍니다"라고 조심스럽게 말하는 환자가 오늘도 있었다. 혹시 자기를 치료해주는 의사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에 이 말을 꺼내기가 무척 힘들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런 환자의 마음 씀씀이가 안쓰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서 "그렇게 하세요. 서울 큰 병원 가서 진찰받아 보시고 별일 없으면 다시 우리 병원에 오셔도 되니까 염려하지 말고 서울에 가 보세요"라고 말해주었다.

실제로 서울에 갔다가 다시 우리 병원으로 돌아오는 환자를 종종 만날 때마다 내가 그렇게 편한 마음으로 서울에 보내주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또 서울에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환자는 대부분 '서울에 가보아도 별다른 것이 없고, 대구 의사들이 더 친절하고 좋더라'고 하면서 치료에 더 협조적으로 되는 경우도 많다.

오래 전에 이런 일을 처음 당했을 때는 정말 자존심이 상해서 불쾌한 느낌도 들었지만, 이제는 자주 겪다 보니 환자의 마음을 편하게 해서 서울로 보내주는 것이 환자가 다시 대구로 내려왔을 때 민망하지 않도록 하게끔 배려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물론 서울의 일부 대형병원이 좋은 시설을 갖추고 몇몇 분야에서 더 높은 의료수준을 보여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모든 진료 분야에서 서울이 앞서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일부 분야에서는 대구의 의료수준이 서울을 능가할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명성을 떨치고 있으며, 해마다 대구를 찾는 외국인 의료관광객(환자)의 수가 크게 증가하고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더군다나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최신 의학정보가 실시간으로 검색되고 전파되는 첨단 정보화시대의 우리나라에서 지역별 의료수준의 차이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 되어가고 있다. 전문의들 사이의 의학지식과 의료정보의 보편화는 대부분 일상적인 질병에 대한 이해가 평준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일부의 중증 질환이나 몇몇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일상적인 질병에 대한 의료수준은 전국적으로 평준화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대구에서 치료받는 것이 시간이나 비용, 그리고 환자 관리의 측면에서 훨씬 유리한 질병인 경우에는 굳이 서울까지 갈필요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서울 큰 병원'에 한 번 가보려는 환자를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고, 지방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류 의사 취급을 당하는 것 같아서 조금 억울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날이 갈수록 심화되어가는 '수도권 집중 현상'의 일면을 보는 것 같아서 뒷맛이 영 개운치가 않다. 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보면, 대구·경북의 수도권 원정진료 환자는 지난 2016년 45만 명으로 2년 전과 비교해 15% 증가했으며, 이들에게 지급된 건강보험료는 4천 3백억 원에 이른다고 하였다.

우리 지역 환자의 역외유출을 줄이기 위해서는 지역 의료인들이 지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기 위한 노력이 우선되어야 하겠지만, 이와 더불어 서울 제일주의적 의식구조를 극복하고 수도권과 지방의 경제적 격차를 줄이고 수도권 집중 현상을 완화하기 위한 범국가적 노력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최재갑 교수(경북대학교 치의학전문대학원 구강내과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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