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포항에서 만난 김일섭(가명·60)씨의 집에는 유도대회 상장과 메달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네 아들이 땀과 노력으로 따낸 값진 메달이지만 이를 바라보는 김 씨는 마음이 복잡하기만 하다. 부인 박혜연(56·가명)씨가 최근 뇌출혈로 쓰러져 호전되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박 씨는 남편이 오래 전 당한 사고 이후 지금까지 생계를 책임져왔다. 일곱 자녀 모두 제 앞가림을 못하는 상황에서 김 씨는 부인 병원비와 앞으로의 생활비 마련이 아득하기만 하다.
◆ 남편이 일 못하게 되자 부인이 가장 역할 도맡아
김 씨는 과거 설비 회사를 운영했으나 1995년 현장 작업 중 낙상사고를 당해 허리디스크와 뇌출혈을 앓게 됐다. IMF가 닥치자 결국 사업체를 접을 수 밖에 없었다. 지금도 김 씨는 디스크 증세가 심하다. 특히 두 다리가 조금만 걸어도 쉽게 저리고 마비된다.
그런 김 씨를 대신해 돈을 벌기 시작한 부인 박 씨는 그동안 모텔 청소부, 개인 식모, 시장 장사 등 안해본 일이 없을 정도다. 3년 전 국내 한 대기업이 지원해 준 트럭을 이용해 최근까지도 '포항 아지매'로 이름을 알리며 겨울철 과메기 장사를 통해 생계를 꾸렸다. 특유의 입담과 넉넉한 인심 덕에 단골손님도 많았다.
하지만 누구보다 씩씩했던 박 씨가 지난 3월 뇌출혈로 집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지금까지 대수술만 3차례를 받았다.
넘어지지 않는 오뚜기 같은 엄마가 쓰러진 것은 온가족에게 큰 충격이었다. 넉넉치 않은 형편에도 7남매, 그것도 유도를 하는 네 아들의 시합까지 살뜰하게 챙겼던 박 씨였다.
김 씨는 "아내가 항상 두통을 달고 살면서도 '괜찮다'는 말만 되풀이했지 건강검진 한번 받을 여유가 없었다"며 "2005년 다둥이가족으로 TV출연했을 당시 방송사에서 기회를 제공해 줘 건강검진을 받은 것이 지금까지 유일했다"고 했다.
박 씨가 쓰러지자 당장 생계는 물론이고 수술비와 입원비도 마련할 길이 없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들어가야 할 치료비도 걱정이다. 김 씨는 "아내가 지금도 말을 횡설수설 한다"며 "앞으로도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것 같다는데 걱정"이라며 깊은 한숨만 내쉬었다.
◆ 국가대표 꿈꾸는 자식 뒷바라지 못해 미안해
김씨네 부부는 7남매 중 5명을 체육인으로 길러냈다. 맏아들 정혁(25)씨가 초등학교 6학년때 누나 정혜(26·가명)씨를 보고 유도에 재미를 붙인 것이 계기가 됐다. 이들을 보고 자란 정우(24), 정미(22·가명), 정재(20)씨도 학창시절 내내 운동을 했다.
특히 정재 씨는 전국 최고 성적으로 지난 3월 용인대학교에 입학한 만큼 촉망받는 유도선수로 평가받고 있다. 정욱, 정석 군도 고교 유도부에서 훈련 중이다.

그러나 유망선수였던 정혁 씨는 지난 2016년 훈련 도중 아킬레스건을 다쳐 더이상 유도를 할 수 없게 됐다. 코치로라도 유도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싶었지만 취업은 쉽지 않았다. 유도부가 있는 학교가 많지 않다보니 지도강사 자리가 워낙 귀한 탓이다.
정혁 씨는 "어머니가 쓰러진 이후에는 병간호만 하고 있다" 며 "부모님을 돌볼 수 있게 포항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싶은데 쉽지가 않아 애가탄다" 고 말했다.
김 씨는 "부유한 형편도 아닌데 7남매 모두 우애도 좋고 엇나간 적 한번 없다 "며 "체육특기생으로 모두 장학금을 받으며 다녔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식들이 각자 자기 앞가림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부모가 좀 더 힘이 돼줘야 하는데 이렇게 짐만 되니 가슴이 무너진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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