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기불황시대를 사는 2030 리포트] <4> '바늘구멍' 뚫고도 30%가 1년 내 퇴사… '좌충우돌 밀레니얼 직장생활'

불합리한 조직문화 저항·필요할 경우 '퇴사'도 과감히… '퇴준생' 신조어까지
두 차례 금융위기 겪으며 저성장 사회 적응 "헌신하다 헌신짝 되기 싫어요"
"삶과 직장 명확히 구분해야" 가치관 차이 조직 내 갈등도 '퇴사 붐' 원인
"이해 못하면 도태된다" '밀레니얼 열공' 나서는 기성세대·기업들

2030 밀레니얼 세대 직장인은 기성세대의 조직문화와 쉽게 충돌한다. 워라밸과 욜로를 내세운 이들은 불합리한 조직문화에 거센 포격을 가하고, 필요하다면 퇴사라는 선택지도 꺼내든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2030 밀레니얼 세대 직장인은 기성세대의 조직문화와 쉽게 충돌한다. 워라밸과 욜로를 내세운 이들은 불합리한 조직문화에 거센 포격을 가하고, 필요하다면 퇴사라는 선택지도 꺼내든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1년 6개월에 걸친 '취준생' 생활을 마치고 지난해 11월 대구의 한 기업에 입사한 김유현(가명·25) 씨는 불과 5개월만인 지난 4월 사직서를 제출했다. 수직적이고 위계질서가 뚜렷한 조직문화가 몸에 맞지 않았고, 왜 일해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채 밤늦게까지 매달려야 하는 업무도 적성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씨는 "대학시절 동경했던 업계였고, 전망도 나쁘지 않아 '평생직장'까지 결심했었지만 막상 들어와 일을 해보니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면서 "'막내'라는 이유로 부당한 잡무를 감내해야 했고, 매일같이 이어지는 야근에 갑작스런 회식이 잡히기 일쑤였다. 몇 차례 목소리를 내봤지만, 변하지 않고 타성에 젖어 살아가는 상사들을 보며 내 미래가 될 수 있다 생각하니 의욕이 떨어져 미련없이 사직서를 냈다"고 말했다.

1980년대 중반 이후에 태어난 이른바 '밀레니얼 세대'가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출하며 견고하던 기성세대의 조직문화에 균열을 내고 있다. '욜로'(YOLO·인생은 한번 뿐)와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내세운 이들은 불합리한 조직문화에 거센 포격을 가하고, 필요하다면 과감히 '퇴사'라는 선택지도 꺼내든다. 직장에서의 성취에 인생을 '올인'했던 기성세대에겐 익숙지도 않고 마뜩치도 않은 생경한 풍경이다.

◆ '바늘구멍' 뚫었지만… 30% '1년 내 퇴사'

3년차 직장인 A(33) 씨는 퇴사를 고민중이다. 입사 이후 더 나은 직장으로 이직하고자 퇴근 이후 영어공부 등 자기계발을 해왔는데, 올 초 영업 부서로 옮기면서 업무가 밀려 저녁시간이 아예 사라지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5년차 B(가명·31) 씨는 아예 아무 계획도 없이 사직서를 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취업해 휴식 없이 갖가지 스트레스를 받으며 달려온 자신에게 퇴사를 '상'으로 주고 싶었다고 했다.

밀레니얼 세대의 사회생활은 기성세대의 '상식'과 충돌하는 경우가 잦다. 대표적인 사례가 퇴사에 대한 인식이다. 사상 최악의 취업난 속에서 어렵게 찾은 직장이지만, 더 나은 대우를 찾아 이직을 반복하거나 근무여건에 대한 불만으로 거리낌없이 퇴사를 선택한다. 퇴사준비생을 뜻하는 '퇴준생'이라는 단어까지 생겨날 정도다.

2016년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대졸 신입사원의 1년 내 퇴사율은 27.7%에 이른다. 지난해 취업포털 사람인이 각 기업 인사담당자 65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1년차 이하 신입사원의 퇴사율은 49%에 달했다. 대부분 더 나은 대우를 찾아 다른 회사로 이직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현상은 밀레니얼 세대가 외환위기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등 두 차례의 금융위기를 겪으며 '저성장'이 고착된 사회를 눈에 담고 살아왔다는 뒷배경과 무관치 않다.

취업준비생 C(25)씨는 "회사에 '헌신하다 헌신짝'된 사례를 자주 봤다. 결국 내 인생을 책임져주는 건 자신 뿐"이라며 "평생직장이라는 개념도 사라진지 오래다. 직장은 자아실현과 생계를 위한 도구이자 동등한 계약 당사자"라고 말했다.

기성세대와의 가치관 차이가 만들어내는 조직 내 갈등도 '퇴사 붐'의 주요 원인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기성세대의 조직문화와 달리 삶과 직장생활을 명확히 분리하려는 의지가 뚜렷하다. 또 수평적인 의사소통에 익숙해 위계질서가 뚜렷한 기존 조직문화와도 사사건건 충돌한다.

올해 한 대기업 계열사에 입사한 D(27) 씨는 "사내에서 등산이나 독서 등 동호회 참여를 권유받을 때마다 가기 싫어도 끌려가야 해 곤란하다. 내 생활과 업무는 별개인데 왜 '가족같은 분위기'를 강조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기업 관계자들은 밀레니얼 세대의 문화를 이해하고 맞춰나가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기업 관계자들은 밀레니얼 세대의 문화를 이해하고 맞춰나가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 '밀레니얼 열공' 시작하는 기업들

기성세대들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세상은 온통 '청년들이 어렵다'는 이야기만 들리는데, 정작 직장에 들어와서는 절박함 없이 '시키는 일만' 하다가 쉽게 그만두는 이유를 좀처럼 이해하지 못한다.

대구 한 중소기업 대표 E(58) 씨는 "신입 직원을 뽑아놓으면 큰 의욕 없이 시키는 일만 하다가 몇 달 못가 퇴사하기 일쑤"라며 "요즘은 회사가 오히려 '을'의 입장에서 신입의 눈치를 본다. 과거의 끈끈하고 가족같던 회사 분위기가 사라져 아쉽다"고 말했다.

회사생활 자체에 대한 인식 차이를 느낀다는 이들이 가장 많다. 대구의 한 공기업에 다니는 F(44) 씨는 "나름대로 조직 적응을 도와주려는 마음에서 모임도 가져봤지만, '업무시간도 아닌데 잡아둔다'는 불만을 듣고 그만뒀다"면서 "우리 세대도 입사 당시 세대갈등을 겪었지만 어떻게든 조직에 적응해야 한다는 절박감도 있었는데, 요즘 들어오는 직원들은 적응보다 스스로의 삶이 더 중요한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세대차이로 인한 갈등이 좀처럼 봉합되지 않자 기업들도 밀레니얼 세대를 이해하려는 시도에 나서고 있다. 단순히 '칼퇴근'을 권장하는 수준을 넘어 조직문화 전반을 개선하지 못하면 잦은 퇴사와 조직 부적응으로 회사 역시 피해를 본다는 인식이 생기고 있다.

대구은행은 '은행장과 함께 툭(터놓고) 톡(talk·대화)해요'라는 주제로 허심탄회한 세대 간 대화를 이끌어내 신입 직원을 중심으로 호평을 받았다. 수평적인 소통을 선호하는 밀레니얼 세대에 맞춰 무기명 사내 게시판을 활성화하기도 했다. 한국장학재단은 10년차 이상 과장급 직원과 신입 직원을 1:1로 매칭해 관계맺기를 돕는 방식으로 직원들의 조직 적응과 소통을 돕기도 한다.

재계 10위권 대기업 대구지사 한 관계자는 "좋든 싫든 이들이 회사의 미래를 짊어져야 하고, 결국 그에 맞춘 조직문화를 만들어가지 못하면 도태되는 것"이라며 "특히 소비자를 상대하는 기업에서는 밀레니얼 세대가 고객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 문화를 이해하는 데 사활을 기울이는 추세"라고 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같은 노력이 결국 기성 조직문화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올 초 대구의 한 공기업에 입사한 G(28) 씨는 "젊은 직원들과의 자유로운 소통행사를 연다며 '필참'하라는 지시가 내려왔고, 판에 박은 이야기만 나누다가 현수막을 들고 기념사진만 찍었다. 결국 '윗분'들의 입맛에 맞는 행사로 기획하니 보여주기식이 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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