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노포 이야기] ⑭ 대구 남산동 헌책방 '코스모스북'

6·25 때 문을 연 헌책방 코스모스북이 2년 전 북카페 형태로 변신했다. 박노익 선임기자 noik@imaeil.com
6·25 때 문을 연 헌책방 코스모스북이 2년 전 북카페 형태로 변신했다. 박노익 선임기자 noik@imaeil.com

"헌책방 보존을 위해서는 자자체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코스모스북 배삼룡 대표. 박노익 선임기자 noik@imaeil.com

너무 많아서 다가서지 않으면 스쳐 지나가버릴 책이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선반을 가득 채우고 있다. 다른 사람의 손때가 묻은 헌책은 낡았다는 것뿐, 꽂힌 책은 새 책과 다를 바 없지만 꺼내보면 달라진다. 사람의 이야기, 시간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헌책방도 점차 사라져가는 중이다. 다행히 우리 지역에는 헌책방이 남아 있다. 사라지는 곳 사이에서 버티는 이들이다. 녹록지 않은 현실에서 책방지기 고수하고 있는 코스모스북 배삼용 대표를 만나 헌책방의 현실과 운영, 어려움 등을 들어봤다.

◆책이 좋아 책방서 일해

대구시 중구 남산동 남문시장 네거리 인근에 위치한 헌책방 '코스모스북'. 1, 2층 140여㎡ 공간에는 헌책 5만권이 나름 질서있게 꽂혀 있다. 사람이 지나다닐 만큼의 통로와 책을 읽을 탁자를 제외하고 바닥부터 천장까지 온통 책으로 둘러싸여 있다. 사람의 손때가 묻은 헌책에서는 갓 찍어낸 새 책에서는 느낄 수 없는 오래된 눅눅함, 일종의 '세월의 냄새'가 풍긴다. 쉽게 구할 수 없는 희귀한 도서도 있어 마치 보물창고에 온 느낌이다.

코스모스북 배삼용(58) 대표는 헌책방의 산증인이다. 18세 때 책방에 발을 들여놓았으니 어느덧 올해로 40년째다. 그는 버려진 책을 '이용 가능한' 책으로, '함께 보는' 책으로 만들고 있다. 그는 이곳에서 사서이면서 대표이고, 책 공급자이면서 이용자가 된다. "요즘은 사람들이 책을 안 사기도 하지만, 버리기도 잘해요. 책을 귀하게 여겨주면 좋겠어요."

코스모스북은 인천에 살았던 배 대표의 외가 친척이 6·25전쟁 때 대구로 파란 와 이곳에헌책방을 차렸다. 책장에 책을 꽂아두고 파는 노점상 형태였다. 배 대표는 1980년 18세 때부터 이곳에서 일했다. "그냥, 책이 좋아서 일했다. 80년대만 해도 책이 귀할 시절이니까 귀한 책을 내 손으로 정리하고, 내 곁에 두는 것 자체가 좋았어요."

군 복무 후 83년 서점을 이어받았다. 코스모스북 2대 사장이 된 셈이다. 책이 귀했던 시절, 헌책방은 배움에 목마른 학생들과 지갑을 선뜻 열기 어려운 서민들의 책 욕심을 두둑이 채워줬다. 남이 썼던 교과서와 참고서로 공부를 하면서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새학기가 시작되는 3~4월과 9~10월이면 교재를 마련하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배 대표는 "주로 초중고 참고서와 교과서, 대학교재였는데, 일요일이 지나가면 책장에 꽂혀있던 책이 텅 빌 정도로 잘 팔렸다"면서 "신학기 대목에 번 돈으로 1년을 나기도 했다"고 했다..

배 대표는 "공부 잘하는 학생이 공부한 책이 잘 팔렸다"고 했다. 특히 서울대에 진학한 학생 책은 인기가 있어, 대학 합격증을 보여주면 정가로 구입해 2,3배 프리미엄을 얻은 팔았는데 없어서 못팔 지경이었다. "한번은 시골에 사는 학교의 실장이 반 전원을 데리고 들렀는데, 실장이 특정 참고서를 고르자 모두 따라서 같은 참고서를 집어 한 번에 40권을 판 적도 있다"고 했다.

10년 전에는 이런 적도 있었다. "83세 어르신이 젊었을 때 읽고 싶었던 박종화가 쓴 삼국지를 찾았다. 머슴살이는 했는데 주인이 책을 더럽힌다며 빌려주지 않아 못 읽었다며 주인을 원망했다. 제가 '50년대 이 책값이 황소 한 마리 값이었다'고 설명하자 '그렇게 비싼 책이었냐'며 이해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배 대표는 책방 경영을 위해 책을 많이 읽었다고 했다. "고객이 찾는 책이 무슨 책인지 알고 있어야 하니까 닥치는대로 읽었다"고 했다. 그래서 배 대표는 손님이 어떤 책을 찾아달라고 하면 뚝딱 찾아준다.

배 대표는 그동안 번 돈으로 책방 규모를 키웠다. 현재는 주위 헌책방을 사들여 1, 2층에 차를 마시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탁자를 마련하는 등 열린 공간의 형태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배 대표는 "70, 80, 90년대가 그립다"고 했다.

◆90년대 말부터 사양길로

1990년대까지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러나 80년대의 교과과정 개편, 90년대의 학습지 시장 활성화, 2000년대의 코믹북의 증가 외에도 책 대여점, 인터넷 서점, 스마트폰 등의 영향으로 헌책방이 하나둘씩 셔터를 내리고 있다. 그 사이 헌책방들은 카페, 공방, 미용실 등으로 모습을 바꿨다. 경제적 풍요 속에서 사람들은 책더미 속에서 값싼 중고 책을 힘들여 찾기보다는 원하는 책을 바로 살 수 있는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서점으로 향했다. "전집류와 백화사전 시장은 거의 죽었다고 보면 됩니다. 북카페 공간도 꾸몄지만, 책방을 찾는 발길은 좀처럼 이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배 대표는 아직도 절판된 책을 구하러 오는 손님이 연락처를 남겨 놓으면 어떻게든 구해 놓는다. "공간이 한정돼 있어 모든 책을 다 가지고 있을 수는 없기에 손님들이 요청하는 책이 없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럴 때는 대구지역 뿐만 아니라 서울, 부산 등으로 연결된 헌책방 네트워크를 활용해 책을 구해준다"고 했다.

◆"헌책방 보존 가치 있어"

현재 코스모스북과 창고매장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는 배 대표는 이제 지쳤다고 했다. "책 보관 장소도 마땅찮고 재고 부담도 가중돼 그만 하고 싶다"고 했다. 헌책 10권을 사서 1권 정도 판다고 했다.

그러나 배 대표는 헌책방이 보존되길 바란다. "대구에는 현재 남문시장과 시청, 대구역 등에서 10여 곳이 운영 중인데, 몇 년 안에 사라질 것"이라며 "빠른 시일 내 헌책방 보존을 위한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배 대표는 인터넷에서 책 제목만 보고 책을 고르는 것과 오프라인 서점에 가서 책을 보고 구매하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고 했다. "단순히 베스트셀러나 유명한 고전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직접 책과 스킨십하며 책을 펼쳐 내용, 활자 크기 등 자신에게 맞는 책을 고르는 것이 어쩌면 그 책을 평생 마음에 새기는 것"이라며 "특히 헌책은 같은 내용이라도 새로 찍어낸 책이 아닌 그 시절 그 표지의 책에서 느끼는 '그날의 맛'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헌책방에는 다양성이 존재한다고 했다. "상업적 가치로 본다면 다 문 닫아야 한다. 그러나 헌책 하나하나에 보이지 않은 역사가 있다. 헌책의 밑바탕이 없으면 새책이 나오기 어렵다. 시중 서점에서 아무리 뒤져도 쉽게 구할 수 없는 절판된 책을 비롯해 오래된 자료들을 헌책방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배 대표는 끝으로 "행정기관과 민간이 함께 협력차원에서 헌책방을 살리기 위한 고민을 하고 대안을 찾고자 노력하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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