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배상식의 여럿이 하나] 다문화 수용성

필자는 가끔 고등학교나 대학교에서 특강을 할 때 이런 질문을 할 때가 있다. "여러분, 혹시 나중에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다면 흑인이라도 결혼을 할 수 있나요?" 이에 대해 고등학생들이나 대학생들은 대략 절반에 가까운 학생들이 긍정적인 답변을 한다. 그런데 이와 유사하게 40대 이상의 성인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면서, "혹시 나중에 자녀가 흑인 며느리나 흑인 사위를 데리고 오면 결혼을 허락할 수 있나요?"라고 물으면, 겨우 5% 내외만 긍정적인 답변을 한다.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일까.

현재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 수가 계속 증가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들을 대하는 우리 국민들의 인식이 크게 바뀌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다문화 수용성' 문제는 아주 중요하다. 왜냐하면 우리 국민이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외국인들을 어떻게 대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사회문화적 수준은 크게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요즘의 청소년들과 40대 이상의 성인들은 학교 교육 내용이나 국가 교육 과정 측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러한 차이점 중의 하나가 바로 다문화사회에 대한 이해 교육 실시 여부이다. 특히 단일민족에 대한 교육 내용의 유무는 인식에 있어서 큰 간극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를테면 오늘날 청소년들과는 달리, 40대 이상의 성인들은 학창 시절 교육받았던 단일민족에 대한 자부심과 자긍심을,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순혈주의적인 우월의식으로 간직하고 있다.

원래 '단군'을 중심으로 한 이러한 단일민족 의식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의 '내선일체론'에 대한 방어 수단으로 조선의 지식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 시기의 지식인들은 일본에 대항하기 위해 '단군'에게 문화적인 인물로서뿐만 아니라 생물학적인 조상으로서의 지위를 부여하였고 이렇게 강화된 단일민족 개념은 한동안 국민을 정신적으로 통합하는 데 아주 유용한 방법이 되었다.

언젠가 경북 지역의 시골 마을에서 특강을 하던 중, 한 노인으로부터 '단일민족'을 부정하는 얘기로 야단을 맞은 적이 있다. 그분은 한 번도 학교 교육을 통해 다문화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데다 우리 조상과 전통문화를 매도한 강사에게 화를 내던 그분의 신념으로는 도대체 받아들일 수 없는 얘기였던 것이다.

이런 노인처럼, 아직도 국민들 중 상당수는 다문화사회와 다문화가정에 대한 문제를 아주 낯설게 느낀다. 원래 낯선 사람이나 낯선 문화는 익숙하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

우리가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을 처음 대하면서 이들에 대해 느끼는 낯섦은 익숙하지 않음에서 오는 불편함이다. 하지만 이러한 낯섦이 다른 사람이나 문화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의 원인이 될 수는 없다. 더욱이 우리 사회에 이러한 낯선 문화와 낯선 사람이 유입된 지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몇 해 전, 세계 최초로 다문화국가를 표방한 캐나다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 당시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밴쿠버의 스탠리 파크를 산책할 때마다 반갑게 미소 띤 얼굴로 인사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낯선 사람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가 너무나 부러웠다. 과연 우리는 언제쯤 한적한 공원에서 생김새나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을 만났을 때, 저들처럼 편안하게 인사할 수 있을까.

배상식 대구교육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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