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술관 나들이 인구가 늘고 있습니다. 이왕이면 가족이 함께하는 것이 좋긴 하겠는데, 아무리 봐도 그림은 잘 모르겠기에 선뜻 발걸음이 향하지 않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조선 정조 때 문인 유한준이 당대의 수장가였던 김광국의 화첩 '석농화원(石農畵苑)'에 붙인 발문 중 '지즉위진애 애즉위진간 간즉축지이비도축야(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 看則畜之而非徒畜也)'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이는 '알면 곧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으로 보게 되고, 볼 줄 알게 되면 모으게 되니 그것은 한갓 모으는 것은 아니다'는 의미입니다. 즉 자꾸 보다 보면 주제와 표현방법, 작가 등 궁금한 것에 대해 답을 찾아 알게 되고 그러면 그 작품을 더욱 좋아하게 되어 안목이 생기고 모으게 된다는 것입니다.

◆ 그림은 읽는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그림을 '읽는다'고 표현합니다. 그림 감상 과정이 독서와 다르지 않다는 의미겠지요. 미술작품을 적극적으로 감상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 미술비평입니다.
테리 바렛은 '미술비평(Criticizing art)'이라는 책에서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비롯해 당대 미술(contemporary art)의 매혹적인 세계를 안내합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미술비평의 단계인 ▷묘사하기 ▷해석하기 ▷판단하기 ▷쓰기와 말하기, 그 단계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예를 실제 작품과 비평가들의 글을 통해 설명합니다.
낯선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일반적인 미술비평과 감상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사용된 소재, 매체, 형식 등을 찬찬히 살피는 묘사 단계에서 출발합니다. 다음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 묻고 답하는 해석의 과정, 그리고 작품의 가치에 대해 나름의 판단을 내리며 말하기와 글쓰기로 연결됩니다.
책을 읽듯 찬찬히 구성 요소들을 함께 살펴보세요. 그러면서 의미를 묻고 답하며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면 분명 그림을 읽을 줄 알게 되고 즐거움도 느끼게 될 것입니다.

◆ 시대의 눈높이로 그림을 읽는다
우리 선조들도 그림을 읽는 대상으로 여겼습니다. 좋은 그림들을 엮어 책으로 만든 '화첩(畫帖)'을 여럿이 함께 감상하고 이야기하며 기록하였습니다. 김홍도의 '씨름' 또한 '단원풍속첩'이라는 책 중 한 페이지였습니다.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은 아름답고 격조 높은 우리 문화와 예술에 대해 쉽고 재미있게 쓴 책입니다. 그는 한 나라의 문화 수준이란 결국 그 터전을 낳고 즐기는 전체 국민의 안목만큼 올라설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그는 옛 그림 감상의 두 원칙이 '옛 사람의 눈으로 보고, 옛 사람의 마음으로 느낀다'라고 했습니다. 지금 나의 시각이 아니라 그림이 그려지고 향유되던 시대의 눈높이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우리 조상들의 세계관, 아름답고 진실한 마음을 읽어나갈 수 있습니다.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며 융합하는 시대입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 문화에 대한 정체성은 나를 튼튼히 지탱해주는 뿌리 역할을 합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아는 만큼 보인다는 깨달음과 함께 우리 문화에 대한 자존감을 얻게 됩니다.
◆ 느리게 읽는 책과 그림은 여전히 가치롭다
요즘은 융합적으로 생각하며 상상할 수 있는 힘의 가치가 강조됩니다. 인공지능(AI) 시대에 인간들만이 갖는 능력 중 하나가 상상력이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질문을 만들고 새로운 답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미술비평가 이주헌은 '상상이 예술이다'라고 말합니다. 미술 작품을 살펴보고 읽는 과정은 작가의 상상과 만나는 경험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상상력이 긴밀히 반응합니다. 상상이 상상을 낳는 것이지요.
독서는 생각하는 힘을 키워줍니다. 책을 읽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우리는 종종 책읽기를 멈추고 스스로에게 질문합니다. 한 권의 책을 다 읽은 후에 책의 내용은 자세하게 머릿속에 남지 않습니다.
반면에 질문이 남고, 그 물음에 대한 내 생각이 남아 사고력을 향상시킵니다. 모든 것이 빠르게 연결되는 초연결의 5G 시대에도 느릿느릿 책을 읽고 그림을 읽는 행위가 여전히 가치 있는 이유입니다. 자, 그럼 이제 그림 한 점을 앞에 놓은 뒤 천천히 질문하고 상상하는 '그림 읽기'의 세계로 들어가 보시지 않겠습니까?
대구시교육청 학부모독서문화지원교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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