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미세먼지가 숨을 쉬기 어렵게 하더니 최근엔 정치인들의 험한 말이 귀를 따갑게 한다. '좌파 독재' '도둑놈들' '사이코패스' '한센병 환자' '달창' '독재자의 후예'…. 내뱉는 말마다 가시가 돋쳤고 되받아치는 말은 더욱 자극적이다. 아무리 말로 먹고사는 정치인이라지만, 서민 시름을 내팽개치고 '막말 배틀'로 국회를 공회전시키며 매연을 뿜고 있으니 정치가 민생난 오염원이요, 반목과 혐오를 부추기는 진앙이라 불릴 만하다.
말(언어)이 지닌 힘과 중요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강조돼 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이야기하는 동물'이라 일컬었고, 하이데거는 언어를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 여러 가지 복잡한 철학적 함의가 있지만, 말이 사람의 됨됨이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행동과 의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수많은 사자성어와 속담, 격언이 입(말)조심을 당부하고, 세 치 혀를 잘못 놀렸다 혹독한 대가를 치른 이야기도 수두룩하다.
다섯 왕조, 열 한 명의 군주를 모신 중국 재상 풍도(馮道)는 "입은 화를 부르는 문이고,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口是禍之門 舌是斬身刀)고 했고, '설망어검'(舌芒於劍·혀는 칼보다 날카롭다)은 말조심을 각인시키고자 자주 인용되는 사자성어다.
그럼에도 정치인의 극언은 새삼스러울 게 없다.
막말이 끊이지 않는 것은 '득'(得)이 '실'(失)보다 크다고 여기는 인식 탓이다. 무리한 비유, 정제되지 않은 단어, 상대를 자극하는 말이 일으킬 파장을 알면서도 그것으로 주목받으니 관종(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서는 남는 장사다. 여기에 환호하는 지지자도 있으니 지지층 결집 면에서도 나쁠 게 없다.
막말이 반복되는 건 잠시 숙이면 그뿐이라는 학습 효과도 기인한다. 분란을 일으켜놓고 '사과' 한마디로 퉁 치려는 경우를 수없이 봐 오지 않았는가.
저급한 막말이 지지층에게 갈증을 풀어주는 '사이다'가 될지 모르나 마셔보지 않았던가, 탄산음료가 주는 청량함은 그때뿐인 것을. 과다 음용 시에는 이가 썩는 등의 부작용이 있다는 것도 알지 않나.
막말로 홍역을 치른 일본의 집권 여당 자민당은 최근 '실언 방지 매뉴얼'을 만들어 소속 의원이나 예비 후보들에게 돌렸다고 한다. 7월에 있을 참의원(상원) 선거를 앞두고 부적절한 발언으로 표를 까먹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 데 여기에는 약자에 관한 표현이나 지지자들 사이에서 쓰는 특정 표현을 유의하라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링컨-더글라스' 일화는 국회 문을 닫고 막말 경연을 일삼는 우리 정치권에 교훈을 준다.
미국의 링컨 전 대통령은 1858년 상원의원 선거 토론회에서 정적인 스티븐 더글라스가 자신을 이중인격자라고 비난하면서 '두 얼굴을 가진 사나이'라고 하자 "제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면 지금 이 얼굴(못생긴)을 하고 있겠냐"고 응수했다.
이후 링컨은 미국의 가장 위대한 대통령 중 한 명으로 추앙받는 인물이 됐지만 더글라스는 그의 생애를 넘어 그의 후손대까지, 160여 년 넘게 막말의 대명사로 회자되고 있다.
국가 번영과 국민 안녕을 위해서라면 정치인은 싸워야 한다. 무기는 논리와 설득이 돼야 한다. 잘못 놀린 혀로 대대손손 소환되는 우를 범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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