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019 한국원자력연차대회, "탈원전 하지만 수출은 하고 싶다"

해외전문가들 고민 없는 탈원전에 경고음 울리지만, 한국은 수출과 해체에만 관심

22일 제주도에서 끝난 2019 한국원자력연차대회에 참가한 국내외 전문가들이 행사 후 손을 맞잡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한국원자력산업회의 제공
22일 제주도에서 끝난 2019 한국원자력연차대회에 참가한 국내외 전문가들이 행사 후 손을 맞잡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한국원자력산업회의 제공

22일까지 이틀간 제주도에서 열린 '2019 한국원자력연차대회'가 예년과 달리 해외 전문가들, 한국 정부 주요 관계자 등이 대거 불참, '한국의 탈핵 기조' 여파를 실감케했다.

특히 이번 대회에 참가한 해외 전문가들 사이에선 '탈핵 정책 속에 원전 수출'이라는 한국의 이중적인 태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올해 대회는 국내 원자력연구개발 60주년을 맞은 의미 있는 자리지만 국내 원전 정책 후퇴를 우려하는 목소리와 함께 참가 규모도 크게 줄면서 힘 빠진 모양세를 보였다.

한국전력 원전수출본부장을 역임한 이희용 제일파트너서 대표는 "문재인 정부 들어 탈원전정책이 원자력 산업의 성장 발판을 끊어놓았다"며 "탈원전정책은 원자력 생태계를 위협하고 수출 전선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미국의 웨스팅하우스 호세 구티에레즈 최고경영자가 22일 한국원자력연차대회에서 세계원자력발전시장 전망을 설명하고 있다. 박승혁 기자
미국의 웨스팅하우스 호세 구티에레즈 최고경영자가 22일 한국원자력연차대회에서 세계원자력발전시장 전망을 설명하고 있다. 박승혁 기자

◆씁쓸한 국내 최고·최대 원전 행사

올해 한국원자력연차대회엔 국내외 원전 관련 업체·기관 40개사, 500여명이 참석했다. 지난해 110개사 700여명에 비해 크게 줄었다. 행사를 주최한 한국원자력산업회 측 마저도 "원전산업이 죽어가는 마당에…"하며 말을 아낄 정도로 분위기는 우울했다.

특히 올해는 한국 수출형 원전인 'APR1400'이 미국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설계인증을 받은 해여서 이번 행사를 바라보는 기대가 컸다.

실제 아랍에미리트(UAE) 바카라 원전 장기정비계약 입찰 협상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모하메트 알하마디 UAE 원자력에너지공사 사장도 참가했다. 하지만 국내 인사는 문미옥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차관과 주영준 산업부 에너지자원실장만 자리했다. 국내 원전 수출에 대해 큰 영향력을 가진 해외 인사들이 대거 참가하는 자리에 산업부 장·차관이 불참한 것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잖았다.

국내 원전기술의 기반을 제공했고, 원전 수출의 파트너사가 될 수 있는 미국의 웨스팅하우스 호세 구티에레즈 최고경영자는 "2040년 아시아를 중심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관련 시장을 잡기 위해 원전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이 벌써 공을 들이고 있다"며 "미래 전력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유일한 에너지원은 원자력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국내 전문가들은 원전해체 계획을 중점적으로 발표해 행사 취지를 무색케했다.

미국에서 온 한 참석자는 "매년 행사를 찾았지만 탈원전 정책 때문인지 올해는 많이 축소된 느낌을 받았다"며 "탈원전을 하겠다면서도 수출은 강조하는 한국의 원전 정책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22일 2019 한국원자력연차대회에서 데니스 무라브예프 러시아공사 테넥스코리아 대표이사가 원자력산업의 세계 동향을 설명하며
22일 2019 한국원자력연차대회에서 데니스 무라브예프 러시아공사 테넥스코리아 대표이사가 원자력산업의 세계 동향을 설명하며 '원전을 정치인들이 선거공약으로 활용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박승혁 기자

◆해외 전문가들은 청정 에너지원으로 원전 강조. 국내는 글쎄

국내외 원전 전문가들은 한국의 원전 정책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데니스 무라브예프 러시아원자력공사 테넥스코리아 대표이사는 "원전과 관련해 정치인들이 이를 선거공약 등으로 활용해선 안 된다"며 "한국은 미세먼지로 큰 고통을 받고 있는데,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원전을 대체할 만한 에너지원이 뭐가 있는가. 무조건 위험하다는 발상은 '운전자들에게 사고날 수 있으니 운전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고 했다.

김명현 한국원자력학회장은 "원자력은 없어져야 할 대상이 아니다. 지난 60년 동안 대한민국의 원자력산업은 기적적인 발전을 이뤘다"며 "이제 그 결실을 수확해야 하는데 에너지 전환이라는 큰 파도를 맞고 주춤하고 있다"고 했다.

알하마디 UAE 원자력에너지공사 사장은 "한국에서의 반원전 감정을 극복하기 위해선 국민 수용성 강화가 중요하다"며 "앞서 탈원전 정책을 펼치는 국가들은 안정적인 기저부하를 원자력이 아닌 다른 에너지원으로 바꿀 때 많은 위험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켄 나카지마 일본 원자력학회 부회장은 "일본은 안정성만 확보한다면, 여전히 원전을 탈탄소화를 위한 현실적인 대안으로 보고 있다"고 했고, 파스칼 쉬엑스 프랑스 원자력 및 대체에너지위원회 국제협력국 부국장도 "프랑스 국민들은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에너지원을 원자력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리아 코르스닉 미국원자력협회(NEI) 회장은 "러시아와 중국이 원전 수출에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서 "세계 원전건설 기회를 한국이 잡길 바라며, 이를 위해선 한국 정부가 원자력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투자해야 한다"고 했다.

또 탈원전 정책과 수출의 연계성에 대해선 즉답 대신 "탄소를 적게 배출하기 원한다면 원자력이 좋다"며 "경험한 바에 따르면 탈원은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원전과 신재생에너지 두가지 발전원이 함께 가는게 가장 좋다"고 덧붙였다.

반면 강신섭 한국수력원자력 원전사후관리처장은 "원전운영기업인 한수원이 앞으로 해체기술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가장 먼저 영구정지된 고리1호기의 경우 해체산업의 마중물이 될 것이고, 이를 중심으로 한수원 내 원전산업 종사자들을 숙련된 해체기술자로 훈련시키겠다"고 했다. 또 "원전산업계가 해체산업으로 옮겨갈 수 있도록 한수원이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한국원자력산업회의 회장인 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국내에서는 원전 비중이 다소 축소되더라도 해외에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반드시 산업 생태계를 유지하겠다"고 했다.

문미옥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차관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 확보 정책을 방향으로 설정하고 에너지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정부가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22일 2019 한국원자력연차대회에 참가한 마리아 코르스닉 미국원자력협회장은 한국원자력이 가진 경쟁력을 높게 평가했다. 한국원자력산업회의 제공.
22일 2019 한국원자력연차대회에 참가한 마리아 코르스닉 미국원자력협회장은 한국원자력이 가진 경쟁력을 높게 평가했다. 한국원자력산업회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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