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은 드문 광경이지만 지난 시절 흔했던 철조망 모습. 시골 과수원의 탱자나무 가시 울타리만큼이나 도시 이곳저곳에는 철조망 담장의 살풍경이 많았다. 백락종은 대형 캔버스에 이 철조망을 주제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는데 몇 가지 측면에서 크게 주목 받을 만하다.
먼저 구상회화가 추상화하는 단계에서 비구상이 아닌 제3의 길을 예시한 점이다. 오로지 추상이 아니더라도 인습적인 표현에서 벗어난 참신한 형식을 탐구한 예다. 둘째로 철조망이란 상징을 통해 시대적 리얼리티를 구현하고 있는 점이 놀랍다. 형식주의에 굴복되지 않고 주제를 살린 회화 정신이 돋보이며 메시지를 전달하는 강렬한 힘을 발휘한다. 끝으로 미적 수단으로써 조형성을 추구하는 작가의 개성 있는 표현력이다. 양식적으로 이만한 참신성을 동시대 회화 어디서도 만나기 힘든 것 아닌가. 복잡해질 수 있는 화면을 배경 색의 단색조로 통일시키며 각기 인물 표정의 재치 있는 표현 방식을 통해 풍부한 이야기를 담았다. 전반적으로 선조로 이루어진 구성에서 작가의 우리 그림에 대한 뛰어난 감각이 실현되었다.
작가는 이미 1956년에 만든 '군상'에서부터 독특한 구상성을 선보이며 개성 넘치는 창작을 내놓고 있었다. 나룻배 안의 인간 군상에 대한 예리한 관찰을 토대로 구성한 그 그림에서 시대와 생활에 대한 통찰력이 빛났다. 우선 이 그림에서 보자면 중앙에 백발의 노부부를 중심으로 좌우로 아들내외 그리고 그들 앞에 올망졸망 네 아이가 있다. 오른쪽 젊은 아낙의 등에 업힌 갓난아기와 그 앞에 조금 큰 소년 그리고 왼편에는 누이로 보이는 소녀가 더 어린 동생을 목말 태우고 있다. 이들 어린 손자 손녀까지 모두 여덟 식구의 한 가족을 그린 듯 보인다. 동시에 그들을 가로막고 있는 철조망을 앞에 두고 부릅뜬 눈으로 이쪽을 지켜보고 서있다. 가운데 노인의 두 손은 철조망을 아래로 짚고 그 앞 천진한 손자는 양팔로 높이 쳐들어 마치 상하로 벌리듯 잡고 있다. 저쪽에서 이쪽을 혹은 반대로 철조망 너머를 지켜보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1964년 작인 이 작품은 당시 쿠데타로 들어선 정권이 전쟁으로 만들어진 분단 상황을 더욱 고착시켜 나가는 것에 우려와 근심의 눈빛을 보내고 있는 것인지. 서로를 적대시하는 이데올로기가 쳐놓은 철조망을 걷어내고자 하는 의지를 보인 것이 아닐지. 시대적 리얼리티를 작품에 구현한 백락종은 1949년에 대구로 귀향해 개인전을 가졌는데 당시 박인채의 지상 평을 통해 극찬을 받았다. 1953년에는 한 신문에 향토 화단에 대한 회고와 전망을 예리한 통찰로 싣기도 하고 1959년에는 동생 백태호와 라재수, 민영식 등과 지역성을 앞세운 '황토회'를 조직해 활동했다. 우리 사이를 단절시키는 현실의 철조망을 걷어내고 우리의 붓과 색으로 우리 이야기를 쓰려고 애쓴 화가의 귀중한 뜻이 느껴져 더욱 감동을 준다.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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