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조현병 포비아(phobia)를 보며

한 상규 오너스심리연구소 대표·심리치료학박사

한상규 오너스심리연구소 대표
한상규 오너스심리연구소 대표

지난 1월 서울 강북삼성병원 주치의 흉기 살해 사건을 비롯하여 최근 정신질환자가 저지른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5명을 숨지게 한 안인득의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 사건, 칠곡 환자 폭행 사망 사건, 대구 40대 여성의 부모 살해 사건, 창원 70대 노인 흉기 살해사건 등.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조현병에 대한 국민청원이 빗발친다. 조현병 환자를 국가가 직접 책임지고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라든가 조현병 살인범죄자를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든가, 개정 정신보건법을 재개정해서라도 환자를 강제로 입원시켜야 한다는 등 격앙된 목소리다. 온 나라에 '조현병 포비아(Phobia)'가 확산되고 있다.

아프면 치료받으면 될 터인데, 환자와 우리 사회가 병의 증상과 원인을 제대로 알고 해결하려는 노력이나 국가적 차원의 대책 마련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정신질환자들이 흉악범죄를 저지르고 난 후 가진 인터뷰를 보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대체로 사건을 직시하지 못하고 횡설수설하면서 "나는 억울하다!" "나는 미친 사람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정신병자다!"라고 말하는 걸 목격할 수 있다. 이는 자기 병에 대한 인식 곧 '병식'(病識)이 없다는 사실로, 스스로가 정신병자임을 자동 드러낸다. 왜냐하면 자기 병에 대한 병식의 유무가 단순한 신경증 환자와 중증정신질환자를 구분 짓는 핵심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자신이 저지른 사건에 대한 인식 부재와 자신의 정신 상태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환자 본인에게, 개정 정신보건법에 따라 입원 및 치료 동의를 구하든가 자가 치료를 바라는 게 과연 현실성이 있는 일인가?

지금과 같이 정신질환자들의 강제 입원이 어렵게 된 건 정신질환자의 입원 동의 등 환자 인권을 중시하는 개정 정신보건법이 시행된 2017년부터다. 그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예측불허의 행동을 해도 지금으로선 어쩔 도리가 없다. 안타깝게도 안인득의 경우, 과거 폭력 전과가 있었고, 가족들조차 강제 입원을 수차례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이 이번 참변을 불러일으켰다고 봐야 한다. 그는 조현병이 악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원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입원 치료를 완강히 거부해 왔고 결국 참혹한 범죄를 저지르고 말았다.

환자 입장에선 자기 의사에 반한 폐쇄병동의 강제 입원은 억울한 옥살이와도 같이 끔찍한 경험으로 다가온다. 가족에 대한 배신감과 트라우마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또 강제 입원을 당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이것이 그들의 방어적이고 공격적인 행동을 촉발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약을 먹거나 치료를 받는다는 건 자진해서 정신병을 인정하는 꼴이 되니 완강히 거부할 수밖에 없다. 환자 가족들도 온갖 수단을 다 쓰며 이들을 격리시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현실적으론 도움이 전혀 안 되는 국가의료시스템의 한계를 절감할 뿐이다.

노숙자 중에 조현병 환자들이 많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끝은 어디인가? 범죄자인가? 자살인가? 이젠 국가와 사회가 팔을 걷어붙이고 직접 나서야 할 때다. 분명한 사실은 '약물투약이다' '강제입원이다' 식의 단편적인 도식만 갖고 지금 얼키설키 꼬여 있는 조현병 환자 문제를 풀려 한다면 실패는 불 보듯 뻔한 일이 되고 만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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