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 30여명의 작은 시골교회가 큰 울림을 주고 있다.
경산 하양읍 도리리의 '하양무학로교회'는 커지고 세속화돼 가는 우리 교회 현실에서 연면적 70㎡(약 21평)의 아주 작지만 교회 본질에 충실한 '예배당다운 예배당'을 지었다.
이 예배당을 짓는데 불제자(佛弟子)들의 '보시'도 한몫 하는 등 종교간의 벽과 갈등을 허물고 서로 존중하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 것도 큰 특징 중 하나다.
1986년 조원경(62) 목사가 개척한 지 33년 된 이 교회는 26일 마치 중세 수도원 같은 분위기의 작은 예배당을 새로 짓고 봉헌 감사 예배를 드렸다.

이 예배당은 여느 교회 건축물과는 완전히 다르다. 회색 벽돌의 단층 건물로 부속시설도, 하늘을 향해 치솟은 교회 첨탑도, 화려한 네온사인의 십자가도 없다. 스스로 교회임을 드러내지 않고 몸을 낮춘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비우고 절제하면서 오직 교회 본질인 기도하고 위안받고 성찰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간단 명료하게' 지어졌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유명 건축가인 승효상(66·이로재 대표·현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의 손끝에서 탄생한 예배당이라는 것도 이 작은 교회가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건축주인 조 목사와 설계를 맡은 건축가 승 대표의 건축 의도와 철학이 이심전심으로 통해 교회 본질에 충실한 교회당을 지었기 때문이다.
'빈자(貧者)의 미학'이라는 건축 철학으로 유명한 승 대표는 국내외에 수많은 '명작'을 설계했지만 하양무학로교회 교회당을 설계하면서 설계비도 받지 않고 '거룩한 헌신'을 했다.

이 둘은 7년 전 하양 무학산 상엿집 주변 전통상례문화관 자문과 설계 등을 하면서 알게 된 뒤 몇 차례 만남을 통해 서로 뜻이 통하고 '범상치 않음'을 확인했다.
조 목사는 "우리 교회가 3년 전 개척 30주년을 맞아 새 성전을 짓기로 했을 때, 비록 규모는 작지만 영성이 충만한 교회를 짓고 싶었다"며 "수도원 등 수많은 건축기행을 했던 승 건축가에게 맡기면 그런 교회를 지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고 했다.
승 대표도 "가난한 교회일수록 절박하고, 절박할수록 본질을 추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교회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면 교회 건축은 근본적으로 신을 감동시키는 건축이 아니라 우리 인간을 감동시켜야 하고, 우리를 선하고 연대하게 하며 이웃에 열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고 했다.
또 "하양무학로교회를 설계하면서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공간이 가지는 신비함이었다"며 "어느 시인은 '명료한 것보다 신비한 것이 없다'고 했는데, 명료하다는 것은 단순함에서 나온다. 그래서 비우고 절제한, 단순·명료함을 통해 교회의 본질만 남겨 놓는 교회당을 설계했다"고 강조했다.
승 대표의 이 같은 건축 철학은 새 예배당 곳곳에 구현됐다. 공간을 통해 경건함을 극대화했다. 예배당 전체 벽과 천장, 바닥을 모두 벽돌로만 지어 위압적이지 않고 따뜻한 느낌을 준다.
회랑에서 묵상의 길과 대형 수반(水盤), 육중한 철문이라는 속세의 공간을 지나 15평의 성스러운 예배실로 들어가면 자신을 한없이 낮추고 신에 대한 경건함이 저절로 우러나오게 한다. 천장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마치 신을 만나는 듯한 벅찬 감동을 준다.
예배실을 나와 좁고 가파른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만나게 되는 3면이 벽돌로 둘러 쌓인 예배당 옥상도, 벽돌로 검박하게 조경한 교회 야외 정원도 경건한 예배 공간이자 주민들의 쉼터가 되고 삶의 공동체 공간이 된다.
하양무학로교회가 작지만 아름답고 거룩한 성전을 짓는 데는 불제자들의 '통 큰 보시'도 한 몫 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돈관 주지스님은 성전 건축이나 나무를 심는데 보태라며 3차례 걸쳐 500만원을 보시했다. 또 조 목사가 3년 동안 불경을 배웠던 인연이 있는 영천의 대각사 묘청 스님도 힘을 보탰다.
친환경 벽돌 생산업체인 대구의 (주)삼한C1의 한삼화 대표이사도 예배당을 짓는데 수천만원 상당의 점토(황토)벽돌 10만장을 무상으로 제공했다. 한 회장은 오랫동안 동화사 신도회장을 맡았을 정도로 불심이 깊은 기업가로 알려져 있다.
이 교회의 26일 열린 성전 봉헌 기념 감사 예배엔 개신교 목사와 신도들은 물론 은해사 돈관 주지와 말사 스님들, 강택규 천주교 대구대교구 원로신부와 수녀, 최재림 경상북도향교발전협의회 회장 및 유림 등 기독교와 불교, 유교 등 여러 종교 관계자도 대거 참석했다.

이 교회 야외 예배공간이자 주민들의 쉼터에는 돈관 스님의 보시로 심은 느티나무가 우뚝 서 있는데, 이날 이 느티나무 아래에 '조 목사님과 아름다운 인연 영원히 이어 주십시오'라는 표지석을 설치했다.
교회 내에 사찰 주지 명의의 기념식수를 하고 이를 알리는 표지석을 설치한다는 자체가 '파격'이자 신선한 울림이 되기에 충분하다.

조 목사는 "많은 분의 '거룩한 헌신'으로 새로 지은 이 성전이 사람들의 영적 공간이자 주민들의 쉼터가 됐으면 좋겠다"며 "또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담을 쌓고 갈등할게 아니라 그 벽을 허물고 관용하며 존중하는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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