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른 아침에] 기업이 할 일, 정부가 할 일

노동일 경희대 교수

노동일 경희대 교수
노동일 경희대 교수

이른바 공유경제와 관련된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택시와 카풀 업체의 대결에 이어 또 다른 공유서비스인 '타다'를 둘러싼 논란이다. 타다의 이재웅 대표가 택시기사들의 분신에 관해 언급한 게 발단이다. "죽음을 이익에 이용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이 대표를 "무례하고 이기적"이라는 말로 나무라고 나섰다. 얼마 전 홍남기 경제부총리를 '혁신의지 부족'이라고 비판한 이 대표의 태도까지 싸잡아 비난한 것이다. 이 대표 또한 질세라 "출마하시려나"라며 맞섰다. 두 사람이 한 번 씩 더 설전을 벌인 후 말싸움은 일단 소강상태에 있다.

기업과 정부, 정치권의 대화가 공유경제의 사회적 해결책 모색이라는 본질에서 벗어나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는 게 아닌가 싶다. 이 대표의 발언이 비판받을 점은 있다. 어떤 경우든 죽음을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은 옳다. 문제는 시점이다. 기사들의 분신으로 택시업계 종사자들이 격앙되어 있다.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고 갈등만 증폭시킬 수 있는 말은 굳이 할 필요가 없었다. '출마' 운운도 거슬린다. 하지만 태도 논란을 넘어 논쟁 과정에서 드러난 인식의 혼란은 정리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한마디로 정부와 기업의 역할에 대한 혼선이다.

최 위원장은 혁신의 과정에서 소외되는 계층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분들의 연착륙을 돕고 혁신의 빛 반대편에 생긴 그늘을 함께 살피는 것이 혁신에 대한 지원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지당한 지적이다. 문제는 그러한 과업이야말로 기업이 아닌 정부가 할 일이라는 사실이다.

근본적인 혁신이든 아니든 기업은 생존과 성장이 우선이다. 소외된 사람들을 배려하고 그늘을 살피기는 쉽지 않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부인하자는 게 아니다. 새로운 기업들에 사회적 책임부터 요구하는 것은 무거운 짐을 메고 경주에 나서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기업은 가볍게 질주하도록 뒷받침하고, 소외되고 그늘에 있는 사람들을 돌보는 임무는 정부의 몫이다. 세금은 그런데 쓰라고 걷는 것이다.

현 정부의 말대로 하자면 혁신성장과 포용성장이 함께 갈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정부가 할 일이다. 혁신의 승자들이 패자와 함께 걸을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게 정부의 소임이다. 기업의 선의를 촉구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혁신의 과실을 나누는 것은 선의에 맡겨 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법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소외되고 그늘에 있는 사람들이 '약자'라는 시각으로만 접근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기술 발전은 특정 기업의 전유물이 아니다. 문제되고 있는 카풀, 타다와 같은 서비스는 엄청난 기술이 필요한 게 아니다. 요금이 택시보다 비싼데도 일정 부분 소비자들의 호응을 받을 수 있는 것은 택시에 대한 불만이 있기 때문이다. 택시업계도 신기술을 적용한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택시업계 스스로 할 수 없다면 제도를 바꾸어 새로운 기술을 활용하도록 적극적인 정책을 펴야 한다. 역시 정부가 할 일이다.

새로운 서비스를 가로막거나 돈을 쓰는 복지정책으로 소외계층의 불만을 무마하는 것만 정부의 할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플랫폼 택시 등 혁신적 서비스는 각종 규제에 묶여 어렵다는 말도 있다. 전통산업에도 혁신이 일어나도록 얽힌 규제를 풀어야 한다. 역시 정부가 앞장서야 할 일이다. 허울 좋은 사회적 합의라는 틀에 맡겨 놓고 눈치만 보는 정부라면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다. 양쪽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결론을 내려야 한다. 그것이 대의민주주의하에서 제대로 된 정부의 역할이다.

주제가 무엇이든 우리의 논쟁이 흘러가는 방향은 대체로 비슷하다. 옥신각신하다가 결국 몇 살이냐, 건방지다 등 본질 대신 태도에 대한 다툼으로 이어진다. 이번 논란 역시 예외가 아닌 듯하다. 대한민국의 미래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 대화를 그런 식으로 허비해서는 안 된다. 한두 차례 언론의 화젯거리로 오르내리고 끝나서도 안 될 일이다. 기업이 할 일과 정부가 할 일을 명확히 하고 서로 공감대를 넓히는 생산적인 논쟁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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