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유물로 읽는 동서양 생활문화] 21세기 지구촌 44개 나라 왕정제, 고대 지중해는?

◆남자 왕위 계승자 2명만 지켜본 일본왕 즉위식
5월 들어 4건의 지구촌 왕실 소식이 들려왔다. 먼저 일본. 5월 1일 아버지의 양위로 나루히토(德仁·59)가 새 일본왕에 올랐다. 고대 샤머니즘의 전통을 간직한 곡옥, 칼, 거울의 3대 신기(神器)를 받으면 왕의 정통성을 얻었다. 즉위식에는 '왕위 계승 자격을 갖춘 남자만 참석한다'는 규정에 따라 왕비 마사코는 남편의 왕 즉위를 지켜보지 못했다. 작은아버지 마사히토(正仁·84)와 동생 후미히토(文仁·54)만 참석했다니, 21세기 가치관과 따로 노는 모습이 생뚱맞다.

◆국민 20만 명이 지켜본 태국왕 즉위식
5월 4일부터 6일까지 3일 동안 태국에서 마하 와찌랄롱꼰(라마 10세·66)왕 즉위식이 치러졌다. 선왕 푸미폰 아둔야뎃(라마 9세)이 2016년 12월 숨진 뒤, 미뤄뒀던 지각 즉위식을 치른 거다. 태국 왕실은 "국민을 즐겁게 하는 것이 좋다"며 37℃ 폭염에 20만 명이 참석하는 거리 행진을 펼쳤다. 200년 전 다이아몬드를 넣어 만든 높이 26㎝, 7.3㎏짜리 금관(소고기 12근)을 머리에 쓰고, 10억바트(365억원)를 비용으로 날렸다. 목표대로 국민을 즐겁게 했다면 다행이다.

◆21세기 지구촌 군주국 44개 나라
영국 왕실은 5월 6일 찰스 왕세자의 둘째 아들 해리 왕자가 아들을 얻었다. 5월 17일 들려온 벨기에 왕실 소식은 뜻밖이다. 2013년 왕위에서 물러난 84세 알베르 2세가 50세 델피네 뵐이란 여인으로부터 친자확인소송에 휘말렸다는 거다. 더욱이 DNA 검사에 응하지 않아 매일 5천유로(666만원)의 벌금형을 받았다는 소식에서 민주국가 벨기에의 왕정 실상이 읽힌다. 왕실 소식 4건을 접하며 21세기 지구촌의 왕국은 몇 개나 되는지 궁금해진다. 193개 UN회원국 가운데 44개다. 인류역사는 왕정제로 출발해 공화정으로 발전한 것일까?

◆기원전(BC) 6세기 아테네 모든 공직자 국민선출
민주주의라면 고대 그리스 아테네를 떠올린다. 아테네는 BC 621년 드라콘이 처음 법을 만들어 법치시대를 연다. 왕은 없다. BC 594년 솔론은 모든 공직자를 직접 선출하는 동시에 평민도 공직을 맡을 수 있도록 했다. BC 508년 클레이스테네스는 18세 이상 남자시민은 투표권을 갖고, 공직에 출마할 수 있는 시대를 연다. BC 462년 에피알테스는 공직을 추첨제로 전환하고 국민이 민회(Eklesia)에서 투표로 정책을 결정하는 직접 민주주의의 꽃을 피운다. BC 334년 알렉산더가 스파르타를 제외한 그리스 문명권 전체를 지배하면서 민주주의가 붕괴된다.

◆BC 3세기 평민대표 호민관 실질 권력
BC 753년 로물루스가 건국한 로마는 왕정이었다. 하지만 BC 509년 부르투스의 혁명으로 공화국을 연다. 켄투리아 민회(Comitia Ceturiata)에서 선출한 2명의 집정관이 공동 통치했다. 하지만 귀족 독주에 평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BC 474년 전쟁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전쟁 파업으로 평민회(Concilium Plebis)에서 호민관을 뽑아 법률거부권을 쟁취한다. BC 287년에는 호민관 호르텐시우스가 제안한 법이 통과돼 평민회에서 통과시킨 법률은 국법과 동등하게 인정받는다. 이런 공화정은 BC 49년 카이사르의 쿠데타로 깨진다.

카르타고 공직자 쇼페팀에 관한 내용이 담긴 석판. 페니키아 문자로 쓰였다. B.C4세기. 튀니지 카르타고 박물관
카르타고 공직자 쇼페팀에 관한 내용이 담긴 석판. 페니키아 문자로 쓰였다. B.C4세기. 튀니지 카르타고 박물관

◆BC 3세기 카르타고 최고 통치자 국민선출
로마와 세 차례 전쟁 패배로 BC 146년 역사에서 사라진 카르타고는 왕정이었을까? 카르타고 박물관에 남은 BC 4세기 유물은 '쇼페트'라 부른 공직자의 행정을 다룬다. 최고위직 '수페타트'는 종신이지만, 선출직이었다. 한니발이 맡던 직책도 '수페타트'다. BC 3세기 그리스 과학자 에라토스테네스는 "훌륭한 법체계로 사회가 안정되고 독재자(왕)도 없다"고 카르타고를 칭송한다. BC 7~BC 1세기 지중해 문명을 꽃피웠던 세 나라 아테네, 로마, 카르타고는 공화국이었다. 서양 고대사의 참모습이다.

김문환 세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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