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 업무 협의차 세종시 정부청사를 방문했다. 일을 마친 후 관계관의 안내로 청사 옥상정원을 구경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옥상 정원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는 표지석이 세종시 정부청사 건축이 이룩한 업적(?)을 뽐내고 있었다. 옥상에 산책로를 만든 것도 신선한 아이디어였고, 굽이쳐 흐르는 건물 배치도 과거의 전형적인 정부청사 모습과는 다른 새로운 시도로 보였다. 그러나 명품 건축물이라 하기에는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旣視感)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청사 설계자인 다이아나 발모리가 2013년 완공된 청사를 보고는 망연자실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원로 건축가 승효상에 의하면, 원래 설계는 아름다운 구릉지를 둘러싸고 옥상정원이 물 흐르듯이 연결되게 되어 있었는데, 구릉은 사라지고 '물 흐르듯 연결되어야 하는 건물은 부처마다 쇠 울타리로 절단하며 파편화'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행정안전부가 나중에 이전하면서 마스터플랜상의 고도 제한과 건물의 흐름을 무시하고 청사 한가운데 우뚝 솟아오른 신청사를 짓는다고 한다.
명품도시를 짓겠다며 국제 공모까지 하여 선정한 마스터플랜이 수시로 훼손되는 것을 보고는 필자가 핀란드의 위바스퀼라(Jyvaskyla) 대학 방문 때 들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헬싱키 북쪽으로 약 270㎞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이 대학 캠퍼스는 핀란드의 위대한 건축가인 알바르 알토(Alvar Aalto)의 작품이다. 캠퍼스 마스터플랜과 주요 건물이 알토의 손에 의하여 탄생했다. 르 꼬르뷔지에 등과 더불어 근대 건축의 4대 거장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알토의 건축철학은 주변 환경 및 에너지와의 조화이다. 위바스퀼라 대학 캠프스 역시 완만한 구릉과 호수를 끼고 숲속에 다소곳이 내려앉아 아름다운 자연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캠퍼스 확장 공사를 할 때 후임 건축가가 최우선적으로 고려한 사항은 기존 캠퍼스 건물과의 조화였다 한다. 마띠 마니넨 총장이 필자에게 선물한 캠퍼스 소개 책자에는 알토의 설계 초안부터 최종 설계에 이르는 단계별 설계 도면이 다 실려 있었다. 캠퍼스와 각 건물의 역사가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훌륭한 건축물은 주변 환경과 서로 호흡하며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로 프랑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의 낙수장(Fallingwater)과 함께 알바르 알토의 마이레아주택(Villa Mairea)을 꼽는다. 마이레아주택은 헬싱키 북서쪽으로 200㎞ 떨어진 해변가 도시 포리(Pori) 근교에 위치하고 있다. 적송과 자작나무로 둘러싸인 숲속에 위치한 이 주택은 실내 분위기 자체도 숲의 일부를 이루는 것 같다. 또한 부족한 햇볕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받도록 실내 배치를 하고 여러 가지 장치를 고안해 놓았다. 주택 자체가 자연의 일부이다.
지형과 주변 환경을 감안하는 알토의 모습은 로바니에미(Rovaniemi)시 설계에서도 잘 나타난다. 산타클로스 마을로 더 잘 알려진 로바니에미는 2차 대전 때 패퇴하는 독일군이 불태움으로써 도시의 90%가 전소된다. 신도시 설계를 위탁받은 알토는 도시 기본 설계 개념을 순록으로 잡는다. 순록 뿔과 같이 도로가 뻗어 나가도록 하고, 축구 스타디움을 순록의 눈으로 삼는다. 이 또한 로바니에미의 지형과 함께 그 지방의 특산물이라 할 수 있는 순록을 형상화한 것이다.
마침 경북도청 신도시 건설 계획이 추진 중이다. 이철우 도지사는 "인근의 하회마을과 함께 훗날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수 있을 만한 명품도시"를 만들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 도지사는 "신도시 건설은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맞는 이야기다. 어설픈 관료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세종시의 실수와 알토를 교훈 삼아 진정한 명품 신도시가 탄생하길 빌어 마지않는다.
댓글 많은 뉴스
"하루 32톤 사용"…윤 전 대통령 관저 수돗물 논란, 진실은?
'이재명 선거법' 전원합의체, 이례적 속도에…민주 "걱정된다"
연휴는 짧고 실망은 길다…5월 2일 임시공휴일 제외 결정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골목상권 살릴 지역 밀착 이커머스 '수익마켓' 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