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새론새평]화이트칼라는 왜 한국당을 여전히 외면하나

황교안 체제 들어선 후 석 달 동안
화이트칼라 지지층 무덤덤한 반응
현 정부 정책적 실수 쏟아내는 데도
한국당 경제 이슈 ‘핀셋 투쟁’ 부족

천영식 KBS이사
천영식 KBS이사

최근 사석에서 자유한국당이 내년 총선 때 어느 정도 선방할지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다. 문재인 정부의 실정에 기대어 약진을 기대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여전히 국민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지적도 많았다.

이와 관련, 화이트칼라층에선 여전히 한국당 지지율에 별 반응이 없다고 했더니, 참석자들이 깜짝 놀라는 표정이었다. 황교안 대표 체제 출범 이후 한국당 지지율이 전반적으로 올랐으니, 화이트칼라층도 조금은 올랐을 것이라는 상식과 배치되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화이트칼라는 한국의 정치 지형에서 독특한 중도 영역을 확보하고 있는 집단이다. 넥타이 부대로 통칭되는 화이트칼라는 사무직 노동자를 포괄한다. 화이트칼라가 중요한 이유는 한국의 미래 담론을 주도할 엘리트 계층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든 명분적으로든, 여야가 미래 정당으로 뿌리내리려면 화이트칼라층 없이는 불가능하다.

황교안 체제가 들어선 이후 석 달 동안 한국당이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화이트칼라 지지층의 무덤덤한 반응은 내부적으로 논란거리를 제공하기에 충분하다. 화이트칼라층이 정치 변화에 가장 늦게 반응하는 집단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거꾸로 화이트칼라층의 변화를 끌어낼 수 있으면, 한국당이 내년 총선과 그 이후의 대선까지도 희망을 걸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 화이트칼라층의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은 58%이다. 이들의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45%이며, 한국당 지지율은 정의당과 같은 12%에 머물고 있다. 화이트칼라층은 한국당에 범접할 수 없는 섬처럼 존재하고 있다. 석 달 전 거의 그대로다.

화이트칼라층은 연령적으로는 30대와 40대를 주축으로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각종 조사에서 30, 40대 지지율과 연동돼서 나타난다.

보수층 내부에서는 화이트칼라에 대해 두 가지 극단적 시각이 상존하고 있다. 하나는 화이트칼라층이 이미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으로 굳어진 만큼, 호남처럼 버겁게 느끼는 흐름이다. 다른 하나는 화이트칼라층 비중을 과도하게 설정하는 바른미래당식 방식이다. 둘 다 극단이다.

화이트칼라는 이념적으로 진보성을 갖고 있어 보수의 공략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머리가 진보이더라도 몸은 현실에 기반하고 있는 이중적 특성을 갖고 있다. 사무직 노동자인 만큼 가장(家長) 및 생활인으로서 각종 경제 이슈에 민감한 층이다. 가령 연말정산에서 신용카드 공제가 되느냐 하는 문제는 화이트칼라층의 여론을 흔드는 이슈이다. '호주머니 지상주의자'들이다. 지금 이 정부는 화이트칼라층을 화나게 하는 정책적 실수를 쏟아내고 있다. 부동산 문제도 그중의 하나다.

문제는 여야를 막론하고 화이트칼라층에 대한 대응 부재 현상을 드러내고 있으며, 그 실점은 보수당이 뒤집어쓰고 있다는 점이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저출산도 화이트칼라층에는 아주 민감한 이슈"라며 "자녀 인적공제 확대나 교육세 환급 등 화이트칼라층이 관심을 가질 이슈가 많은데도 한국당조차 별 대응을 하지 않고 있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화이트칼라층은 막말에 거부감을 갖고, 기득권에 부정적으로 반응하며, 실용성을 중시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념적 틀로 접근하는 것은 닫힌 문을 굳게 잠글 뿐이며, 경제 이슈로 접근하는 게 최선이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이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각종 경제지표도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그럼에도 화이트칼라층의 여론이 변하지 않는 것은 분명 무언가 잘못돼 있는 셈이다. 한국당이 경제 이슈에 민감해 하는 화이트칼라층을 공략하지 못하고 있다면, 지금까지 무슨 투쟁을 했다는 것일까. 대중의 경제적 불만을 정확히 집어내고 대안을 제시해주는 '핀셋 투쟁'이 절실한 시점이다. 하다못해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의원 세비라도 갹출하든지, 민생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하나라도 공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 주변의 화이트칼라는 문재인 정부를 독재라기보다 무능으로 느낀다.

천영식 KBS 이사, 계명대 언론광고학부 초빙교수. 전 청와대 홍보기획 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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