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동화 '헨젤과 그레텔'의 무대는 어느 깊은 숲이다. 같은 이름의 오페라에선 아버지 페터와 아들 헨젤이 숲에서 주워온 재료로 빗자루를 만들어 판다. 동화에서나 오페라에서나 아이들이 숲에서 길을 잃고 마녀와 조우한다는 설정은 같다.
어쨌거나 그들은 몹시 가난했다. 아이들조차 일해야 겨우 끼니를 이을 수 있었다. 숲 끄트머리에 사는 가족이 만든 빗자루가 조그마한 시골 장터에서 과연 몇 개나 팔렸을까?
그런데 헨젤과 그레텔에게 온라인 쇼핑몰이 있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테다. 지난 2월 화제를 모았던 '영주대장간 호미'의 성공처럼 말이다. 실제로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아마존을 위시한 온라인 쇼핑의 성장세는 가공스러운 데가 있다.
미국에서는 전체 소매 판매 가운데 온라인 쇼핑 비중이 이미 오프라인 비중을 앞질렀다. 재래식 상점 수만 곳이 조만간 폐업 위기에 몰린다는 예측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월마트·코스트코 등 온라인 쇼핑 확산으로 위기에 놓인 54개 기업의 주가지수를 일컫는 '아마존 공포종목지수'란 섬뜩한 용어도 등장했다.
기존 소매점들이 직면한 위기는 한국에서도 뚜렷하다. 오프라인 유통 최강자인 롯데쇼핑과 이마트의 주가는 실적 부진 탓에 역사적 저점 수준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온라인 쇼핑 거래액은 총 111조8천939억원으로 2001년에 비해 33배나 증가했다.
26일 막을 내린 대구국제뷰티엑스포에서 아마존이 주목받은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아마존 한국법인 측이 마련한 입점 설명회에는 대구경북 기업 10여 곳이 신청해 상담을 받았다. 입점 과정·비용·서비스 등을 자세히 알아보는 등 분위기는 뜨거웠다.
우리 정부 역시 아마존처럼 성공한 혁신기업이 어서 등장하기를 몹시 갈망하는 듯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월 제2벤처붐 확산전략 대국민 보고회, 혁신금융 비전선포식에서 연거푸 아마존을 언급했다. 아마존이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한 것처럼 정부가 앞장서고 금융권이 도우면 벤처 덕분에 우리 경제가 살아날 것이란 기대였다.
그러나 성과는 의문이다. 새로운 경제 주체의 성장이 절실한 시점이지만 민간 중심의 투자가 아닌 관(官) 주도의 밀어붙이기는 신기루로 끝날 위험이 있다. 보여주기식 성과에만 집착하다 보면 20년 전 벤처 태동기 때처럼 옥석 가리기에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제프 베이조스가 아마존을 창업했을 무렵 국내에 전자상거래 기업이 나타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유니콘(기업)을 찾겠다고 욕심부리는 것보다 우리 옆의 헨젤과 그레텔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먹을거리를 찾으러 숲에 들어갔다가 마녀에게 잡아먹히도록 둬서는 안 된다. 세계적 경영 사상가인 필립 코틀러 미국 노스웨스턴대학 석좌교수는 성공하는 브랜드는 '와우 모멘트'(wow moment·놀라운 경험의 순간)를 스스로 창조한다고 설파했는데, 정부가 그런 일을 해낸다고?
29일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도소매·숙박·음식점의 대출 잔액은 205조8천억원으로 작년 말보다 무려 5조6천억원 증가했다. 경기 악화로 폐업 위기에 몰린 자영업자들이 대출을 늘린 영향으로 풀이된다.
어린 시절 가고 싶어도 가선 안 됐던 '과자로 만든 집'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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