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은 다른 동물의 몸에 기생하며 영양분을 빼앗아 살아가는 생물이다. 기생충과 숙주는 공존하지만 공생은 할 수 없는 적대적인 관계다.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은 이 둘의 이질을 한국의 현대 가족에 풍자한 영화다. 숙주에 기생하는 한 가족의 비애를 유머와 위트, 조롱과 연민으로 그려내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비트는 솜씨가 경지에 올랐다. 스타일은 정교하고, 메시지는 훨씬 완숙해졌다. '살인의 추억'과 '괴물' 같은 극한의 상황에서도 엿보였던 긍정과 희망은 사라지고, 힐난에 가까운 차가운 페이소스가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대한민국에 반지하 종족이 있다. 지상을 끌어내려 겨우 햇볕을 쬐지만, 온갖 먼지와 취객의 오줌 세례를 받아야 하는 계층이다. 전원이 백수인 기택(송강호)의 가족. 햇볕도 잘 들지 않지만, 돈도 들어올 곳이 없다. 와이파이까지 지상 모처의 것을 끌어다 쓴다. 주인이 비밀번호를 거는 바람에 그마저도 끊어졌다.
"계획이 무계획이야. 계획이 없으면 실패할 이유도 없어." 무능한 가장 기택과 "돈이 다리미야. 돈이 주름을 쫙 펴줘"라며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엄마 충숙(장혜진). 4번 수능을 친 낙방생 백수 아들 기우(최우식), 서울대 서류위조학과가 있으면 수석입학 할 딸 기정(박소담). 이 넷에게 지상 종족의 꿈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그들이 꿈꾸는 지상 종족이 있다. 오르막길을 올라 큼직한 대문에 견고한 집, 볕이 잘 드는 정원이 있는 글로벌 IT 기업 박 사장(이선균) 댁이다. 착하고 예쁜 아내 연교(조여정)와 어린 남매가 부러울 것 없이 살아간다.
어느 날 반지하 인생이 지상 종족에 기생할 기회가 찾아온다. 기우가 학력을 위조해서 박 사장 저택에 과외 선생으로 들어간 것. 기우의 재빠른 판단으로 아빠는 운전기사로, 엄마는 가정부로, 동생은 미술 선생으로 전원 입성한다. 드디어 반지하 종족의 기생 삶이 시작된다.
봉준호 감독은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전하는 탁월한 재능이 있다. 지리멸렬한 기택 가족사와 그들의 피나는 분투가 봉 감독 특유의 생활형 유머로 버무려져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기생충'은 빈부격차가 커지면서 생긴 계층과 계급의 갈등을 그린 영화다, 부유층의 허영과 위선, 가난한 층의 파렴치와 영악함을 들추면서 공생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를 꼬집은 블랙코미디다. 박 사장은 "선을 넘는 사람들, 내가 제일 싫어하는데..."라며 아예 종족이 다름을 공언한다.
지난해 일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도 해체된 현대 가족의 비애를 그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올해 칸이 '기생충'을 선택한 것도 가족을 통한 빈부 양극화의 문제가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란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기생충'은 계층간의 뜯고 뜯기는 쟁탈전, 특히 반지하와 지하, 소위 희망이 없는 종족들의 처절한 육탄전이 씁쓸함을 넘어 처연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간혹 지하철을 타면 나는 냄새, 썩는 듯한 냄새 있잖아." 그 가난의 냄새를 경멸하는 지상 종족과 그런 대우를 받으면서도 '리스펙트'(존경)를 찬양하는 지하종족의 타협할 수 없는 극단이 긴 지하터널처럼 절망스럽게 다가온다. 생활무전기로 소통하는 박 사장 가족과 달리 모르스 부호로 교신을 해야 하는 그들의 낙후성은 낙오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의 메타포이다.
봉 감독은 지상과 반지하, 지하의 경계를 카메라의 수직적인 시선으로 구도를 잡았다. 세계적인 대가가 지은 대저택의 수많은 계단과 그런 계단들을 한 없이 내려와 자리 잡은 반지하방, 그리고 다시 지하로 이어지는 긴 계단 들이 근접할 수 없는 한국사회의 계층을 형상화하고 있다. 계단과 함께 긴 터널과 골목, 반지하를 분할해 덩그러니 올려 있는 변기 등 공간을 통한 메시지도 탁월하게 그려낸다.
장편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에서 시작해서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 '마더'(2009), '설국열차'(2013), '옥자'(2017)에 이르기까지 전작 속 장르적 스타일을 '기생충'에서 모두 쏟아낸다. 코미디와 스릴러, 액션 그리고 드라마의 특성들이 잘 버무려져 킥킥 웃다가도 긴장감으로 가슴을 졸이고, 다시 안타까움에 가슴을 찡하게 한다.

"선악의 이분법을 버리고 적당히 착하고 적당히 나쁜 보통의 인간을 묘사하려고 했다"고 봉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가진 자를 경멸하며 관객과의 영합하려는 자세도 취하지 않는다. 사장 부인 연교는 남의 말에 잘 속는 착한 인물로 그려진다. '이쁘면 착하다'는 미모 지상주의가 '기생충'에서는 '돈 있으면 다 착하다'는 말로 변주된다.
송강호는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지만, 조여정과 이선균 등 주·조연 배우들의 앙상블이 돋보인다. 선장이 뛰어나면 선원도 뛰어나는 법인가. 캐릭터들이 두루 두루 살아 펄펄 뛴다.
'기생충'은 현대 한국사회의 자화상이 통렬하고도, 설득력 있게 그려진 작품이다. 재미는 있는데, 아프다. 131분, 15세 이상 관람가
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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