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학교 병원에서 만난 민아(18·가명)는 엄마 김혜정(55·가명)씨의 손을 꼭 잡고 수혈을 받고 있었다. 민아는 갑작스레 찾아온 백혈병으로 지난 2월 설 연휴부터 지금까지 3차에 걸친 항암치료를 견디고 있다.
고3 수험생이다보니 극심한 고통에도 좀처럼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는 민아. 이런 딸을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백혈병 완치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데다, 당장 수중에 모아둔 돈이 한푼도 없는 탓이다. 팍팍한 살림 탓에 보험하나 들어놓지 못한 게 못내 한스럽기만 하다.
◆고3 진학 직전 급성 백혈병 진단
민아는 2017년 한 특목고에 입학해 2년 동안 7개 동아리·학회 활동을 할 정도로 열정적인 학생이었다. 학교생활에 내신 공부까지 하느라 하루 평균 3~4시간만 자는 등 무리한 생활을 계속한 것이 부담이었을까. 민아는 2학년 진학 후 자주 가슴이 답답하고 어지러운 증상을 호소했다. 특히 조금만 앉아있어도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 고생했다.
병원에 가 봐도 몸살, 빈혈이라는 말만 돌아왔고, 영양제와 보약으로 버텼지만 증세는 점점 더 나빠졌다. 결국 민아는 고3 진학을 코앞에 둔 올 초, 연필 한 자루 제대로 손에 잡지 못할 지경이 돼서야 백혈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독하디 독한 약을 견디다 못해 4달 만에 18세 소녀의 머리카락은 모두 다 빠져버렸다. 민아는 "7일동안 24시간 내내 주사를 맞았는데 처음에는 피부가 검은색으로 변하더니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나더라" 며 "두통이 죽을 만큼 심해 '제발 안 아프게 해달라'고 마음 속으로 수없이 빌면서 버텼다"고 했다.
아직 한창 꿈많을 소녀인 민아는 항암치료도 두려웠지만 사실 학교생활을 못하는 것이 제일 슬프다. 속깊은 성격의 민아는 "친구들이 보고싶지만 괜히 연락하면 고3인 친구들 공부에 방해될 것 같아 참고 있다"고 했다.
이 와중에도 민아는 병실에서 모의고사 문제를 풀다가 간호사들에게 저지당하기 일쑤다다. 엄마는 한 번도 민아에게 공부를 강요한 적이 없지만 민아는 끊임없이 공부 걱정에 조바심을 낸다.
민아는 "어렸을 때부터 가정형편이 안 좋아서 가족 모두 힘들게 살았고,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공부를 열심히 해서 내가 좀 더 큰 사람이 되면 엄마 고생도 덜어주고, 세상에 받은 도움에 보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엄마, 학원강사로 근근이 생계유지
IMF 당시 사업에 실패했던 민아 아버지는 재기를 다짐하며 일본 도쿄에 있는 IT 기업에 취직했다. 김 씨도 그를 믿고 일본으로 따라갔지만 남편은 좀처럼 마음을 다잡지 못했다. 오히려 김 씨가 선술집 주방보조로 일하면서 생계를 꾸려야 했다. 2005년 김 씨는 남편과 결별하고 친정집이 있는 대구로 돌아왔다.
하지만 기초생활수급금 30만 원과 김 씨가 학원에서 일해 번 돈 80만 원으로는 아이 둘을 키우기에 너무 빠듯했다. 아이들 학원비는커녕 어렵사리 당첨된 공공임대 주택 보증금도 마련할 수 없어 전전긍긍 해야했다. 김 씨는 "그 때 이유도 묻지도 않고 돈을 빌려줬던 교회 집사님이 아직도 가슴에 사무치게 고맙다"고 했다.
현재 민아는 다행히 언니과 골수가 일치해 오는 26일 골수이식 검사를 기다리고 있지만 이식 후에도 완치까지는 그 무엇도 예상할 수가 없다.
이런 딸을 바라보는 김 씨의 가슴은 무너진다. 그는 "그동안 가난해서 못 해준 것만 자꾸 떠오른다"면서 "대학 못 가도 좋으니 제발 건강만 되찾으면 좋겠다"고 눈물을 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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