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월의 흔적] (26)괘종시계…태엽의 힘으로 쉼 없이 '뚝닥뚝닥'

생각난다. 그때가 생각난다. 우리 집 마루에는 괘종시계가 걸려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이었던 것 같다. '뚝­닥 뚝­닥' 힘차게 시계추가 쉬지 않고 흔들거렸다. 그러다가 '뚜­우­다­악 뚜­우­다­악' 하고 기운 빠진 소리를 내면 할머니가 "시계 밥 줘라"고 하셨다. 어린 나로서는 시계도 '밥을 먹는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흔들리는 소리가 느려지고, 기운 빠진 소리를 내면 태엽이 풀렸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조만간 멈출 수밖에 없고, 얼른 밥을 줘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시계가 멎는다. 그래서 시계 추가 흔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했는데,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일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시계 안에 태엽이 있다는 사실과 그것이 풀리면 시계가 멈춰 선다는 이치를 안 것은 세월이 한참 흐른 뒤였다.

아버지가 밥을 주셨다. 시계의 문짝을 열고 영어의 'T'자처럼 생긴 기구를 구멍에 꽂아서 오른쪽으로 또는 왼쪽으로 돌리셨다. 그러고 나서 시계추를 손으로 흔들어 움직이게 한 뒤 문짝을 닫으셨다. 내가 학년이 올라가자 그 방법을 알려주면서 나더러 시계 밥 주는 일을 넘기셨다. 키가 작아서 의자를 놓고 올라서서 태엽을 감았다.

우리 집 괘종시계는 '마림바'처럼 아름다운 소리를 냈다. '땡­땡­땡' 하고 울리는 소리는 현재 시간을 알리는 음향신호였다. 당연히 공신력이 생명이다. 그러나 우리 집 벽시계는 공신력에 구애받지 않고 살았다. 우리 식구들의 시간관념과 상통하기 때문이다. 우리 식구들은 시계가 정확하게 시간을 대는지 대지 않는지 관심이 없었다. 시간에 맞춰 출퇴근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날이 밝으면 일어나서 움직이고, 해가 넘어가면 저녁을 먹고 자리에 들었다.

그 소리가 기다려지는 날이 있었다. 집안의 제삿날이었다. 그때는 열두시가 지나야 제사를 모셨는데, 제사를 모시고 나면 먹을 게 많았다. 평소에 보기 드믄 쌀밥이며 고기며 과일 같은 것을 한껏 먹을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땡­땡­땡' 하는 소리를 손꼽아 헤아리면서 '오늘은 잠을 자지 않고 기다려야지' 하고 벼르기도 하였다. 하지만 번번이 생각에 그치고 말았다.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에 빠져들고 말았기 때문이다.

우리 집 괘종시계가 언제 어떻게 없어졌는지 알지 못한다. 그동안 여러 번 집을 옮겼고, 그럴 때마다 좋은 시계를 선물로 받았다. 또한 세월이 흐르면서 디자인이 예쁜 전자시계가 쏟아져 나왔다. 시계 소리도 다양해졌다. 맑고 고운 새소리, 뻐꾸기 우는 소리, 부엉이 우는 소리, 아름다운 음악 소리… . 그뿐이랴. 색깔로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도 나왔다. 뭐니 뭐니 해도 어린 시절 들었던 우리 집 괘종시계 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김 종 욱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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