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학교가 지난해 발간한 '경북대학교 70년사'(이하 70년사) 실종 사태(매일신문 5월 30일 자 1면)에 대해 동문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학교 측이 '책 내용 중 일부는 전 총장에 대해 명예훼손의 소지가 있다'며 외부에 책을 공개하지 않고 있어서다.
70년사를 둘러싼 의문은 크게 두 가지다. 발간했지만 찾아볼 수 없는 책 100부는 현재 어디에 있는지, 학교 측 주장처럼 일부 내용에 '명예훼손 소지가 있다'는 게 맞는지 여부다. 특히 책 공개 여부의 핵심인 명예훼손 내용을 두고 법률적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이 때문에 학교의 적극적 해결 의지 없이는 사태가 장기화할 전망이다.
◆발간된 100부 어디로?
경북대에 따르면 70년사는 지난해 8월 100부 발행됐다. 지역 거점 국립대학으로서의 위상과 규모를 고려하면 턱없이 적은 부수다. 이 100부를 찍어내는 데 2천만원, 인건비와 자료수집 등 연구개발에 5천500만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애초 1천부 발행에 1억원가량 소요될 것으로 추산했으나, 100부 발행에만 총 7천500만원이 든 셈이다.
더욱이 경북대는 발행 일자를 제대로 적지 않았다. 내용을 수정하면서 지난해 8월에서야 70년사를 발행했음에도 책에는 발행 일자를 70주년인 2016년으로 2년 앞당겨 표기했다.
더 큰 문제는 이 책이 '유령 도서'라는 것이다. 지금까지도 학교 도서관은 물론 국립중앙도서관, 국회도서관 어디서도 검색되지 않는다. 20~60년사가 학교 도서관에 여러 권 비치된 것과 대조되는 부분이다. 또한 책표지에 국제표준도서번호(ISBN)를 표기했음에도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책을 납부하지 않아 검색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발행된 100부는 어디에 있을까. 경북대 기획처의 '70년사 관리 대장'을 보면 6월 현재 학교 본부가 보유하고 있는 70년사는 총 33부다. 본부에 없는 게 67부라는 의미다.
일단 지난해 8월 2일 출판부로부터 100부를 인수한 후 그달에만 59부가 배부됐다. 우선 총장실과 부총장실(이상 2부씩), 기획처장실·기획부처장실(이상 1부씩), 교수회(10부) 등이다. 편찬위원회 소속 22명에게도 38부가 배부됐다. 이는 유일하게 학교 밖으로 나간 책이다.
학교 측은 꼭꼭 숨겨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보고 싶을 때 대여해 볼 수 있도록 한다고 해명했다.

◆'명예훼손 소지' 내용은?
70년사에 대한 경북대의 입장은 "책 내용 중 전임 총장의 평가 부분에 명예훼손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70년사 실종 사태가 빚어졌다.
70년사는 ▷제1부 총론 ▷제2부 조직·운영과 캠퍼스 ▷제3부 교육과 연구 ▷제4부 대학문화와 교수회 등 4부 13장(836페이지)으로 구성됐다. 이 중 학교가 문제 삼은 내용은 대학의 연도별 역사를 담은 '총론' 제4장(1987~현재·대학 자치제의 정립과 한계)이다.
70년사에는 노동일 전 총장 재임 당시 '글로벌플라자' 건립 과정이 담겼다. 책에선 "예산 집행에 불합리하고 무리한 점이 적지 않았고, 시공사 선정에서도 1위를 선택하지 않고 13위를 한 회사를 낙점한 것도 커다란 의혹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고 적시했다.
또 함인석 전 총장 재임 시절에는 타당한 명분 없이 보직 수가 전례 없이 늘어나 본부 조직이 비대해졌고, 총장 선거 운동 당시 이를 활용했다는 내용이 적혔다. 본문에서는 "총장 선거운동 과정에서 하나의 보직에 보임 순서까지도 내정돼 있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였다. 교수들이 부나비처럼 당선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몰려드는 행태를 보였다"고 언급했다.

◆법률적 해석 제각각
해당 내용이 명예훼손에 해당하는지를 두고 외부 법률 전문가들의 시각은 다양했다. 다만 당사자들이 명확한 입장이 밝히지 않는 이상 사태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데는 의견이 모이고 있다.
지역의 한 변호사는 "노 전 총장 부분은 명예훼손 이슈가 다분하다. 비방성 표현들이라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받아들여지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반면 함 전 총장에 대한 내용은 대부분 실제 사실을 언급한 것이다. 평가적 표현이 일부 있지만 표현의 자유가 포용할 만한 범위 안에 있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지역 대학의 법학전공 교수는 "노 전 총장에 대한 내용 일부가 비난조이긴 해도 그것만으로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사회적 가치, 평가를 침해하는 내용인지는 의문"이라며 "대가를 받는 등 부정을 저지른 게 아니라면 함 전 총장에 대한 비판도 명예훼손이라 보기 어렵다"고 했다.
다만 이 교수 역시 "당사자가 자신에 대한 사회적 평가에 심한 손상이 왔다고 발행인인 학교 또는 출판 관계자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고발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학교의 명예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경북대 교수회 관계자는 "당사자가 명예훼손을 문제 삼고, 최종적으로 법원이나 검찰에 의해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더라도 학교 입장에서는 대외적으로 좋을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상동 경북대 총장은 "잘 모르는 사안이다. 할 말이 없다"며 답을 피했다. 경북대 기획처 관계자는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내용 당사자의 법률적 대응 등 추이를 보고 어떻게 할지 결정하려 한다"며 "만약 소송전 등으로 이어진다면 학교 전체의 명예가 실추되는 것이기에 책을 섣불리 배부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우원식 "최상목, 마은혁 즉시 임명하라…국회 권한 침해 이유 밝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