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기생충', 봉장르의 진수를 보여주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이미 예고된 성취였다

영화
영화 '기생충'

보통 영화제 수상작은 깊이는 있지만 넓이는 없다는 게 통설이다. 이른바 예술로서의 가치는 충분하지만 대중성은 떨어진다는 것. 하지만 봉준호 감독이 칸느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기생충'은 다르다. 여기서는 봉준호 감독 특유의 깊이와 넓이의 조화가 보인다.

◆그냥 봐도 재밌지만 들여다보면 더 재밌는

영화 '기생충'의 첫 장면은 반 지하에 사는 기택(송강호)네 집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이다. 영화에서 창이란 소재는 영화의 관점을 드러내곤 한다.

'기생충'은 반 지하의 관점에서 바라본 세상을 그린다. 그런데 그 광경이 흥미롭다. 사람의 눈높이보다 살짝 위에서 다른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때론 차가 지나간다.

어두워진 밤이면 취객이 다가와 전봇대를 잡고 토악질을 하기도 하고 때론 노상방뇨를 한다. 그걸 보고 있는 기택네 가족들의 리액션이 더해지면서 이 광경들은 웃음이 빵빵 터지는 장면을 연출한다.

이를테면 간만에 가족이 모여 고기 좀 구워먹으려는데 누군가 토를 하고, 맥주 좀 마시려는데 취객이 노상방뇨를 하는 장면이 교차되면서 만드는 웃음이다.

이처럼 '기생충'은 그 자체의 상황이 만들어내는 웃음이 있다. 하지만 만일 이 반지하라는 공간을 우리네 사회의 계급적 구조를 표징하는 것으로 의미화해서 바라보면 더 재밌는 영화적 경험들이 가능하다.

반지하는 지상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하도 아닌 그 중간에 걸친 어떤 위치라는 점에서 계급의 경계가 애매한 지점이다.

'기생충'은 결국 이 반지하에 사는 기택네 가족이 햇살 가득한 지상에서 살아가는 박사장(이선균)네 가족과 어우러지면서 생겨나는 파열음을 그린다. 그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존재하지만, 박사장네 가족이 보지 않을 때 기택네 가족은 무시로 그 선을 넘나든다. 그 과정은 흥미진진할 수밖에 없다. 선을 넘는 짜릿함이 있고, 그것이 발각될 수 있다는 긴장감이 존재한다.

누군가는 숨고 누군가는 찾으려는 그 욕망은 마치 숨바꼭질 같은 근원적 재미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그 경계를 넘는 일들이 은폐되어 있을 때만 해도 모든 게 평화롭게만 느껴지던 이 계급의 풍경은 어느 순간 정체가 드러나며 파국에 이르게 된다.

그 과정은 마치 바퀴벌레의 출몰을 떠올리게 한다. 어둠 속에 숨어있을 때는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지만, 막상 불빛 속에 튀어나와 있을 때는 난장판을 만들어버리는 이질적 존재가 만들어내는 불안감.

기택네 가족이 박사장네 가족과 섞이는 과정들은 이처럼 그 자체로도 흥미진진하지만, 어디선가 우리가 겪었던 기생충 혹은 바퀴벌레 경험 같은 것들을 거기서 떠올리고 그러한 '기생의 삶'이 어쩌면 우리네 삶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 그 블랙코미디적 희열이은 더욱 커진다. 이것이 이른바 '봉장르(봉준호 장르)'라 불리는 세계다. 그냥 봐도 재밌지만 들여다보면 더 재밌는.

영화
영화 '괴물'

◆이미 '지리멸렬'에서부터 추구됐던 풍자의 세계

놀라운 일이지만 봉준호 감독의 이런 블랙코미디적 풍자의 세계는 그가 영화아카데미 시절 만든 첫 작품이었던 '지리멸렬'(1994)에서부터 지금껏 일관되게 추구된 것들이다.

네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지리멸렬'의 첫 에피소드 제목이 '바퀴벌레'라는 사실은 그래서 '기생충'을 보고 다시 생각해보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도색잡지를 보다 여학생에게 들킬 뻔한 교수가 책을 던져 잡지를 가린 후, "무슨 소리냐"는 질문에 "바퀴벌레가 있어서"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봉준호 감독의 세상을 꼬집는 위트가 이미 '지리멸렬'에서부터 있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봉준호 감독 특유의 세상을 바라보는 풍자적 시각을, 그만의 독특한 색깔로 만들어낸 또 하나의 요인은 장르를 비틀고 변주하는 그의 연출방식이다. 장편 데뷔작이었던 '플란다스의 개'는 시끌벅적한 소동극 속에 사회극을 심었고, '살인의 추억'은 필름 누아르에 사회풍자를 더해 넣었다.

괴수물로서의 '괴물'은 위기에 대처하는 콘트롤타워의 부재를 담는 블랙코미디가 뒤섞였고, 범죄 미스터리를 담은 '마더'는 모성애의 또 다른 잔인한 얼굴을 그려냈다.

SF 장르로 할리우드의 문을 두드렸던 '설국열차'는 놀랍게도 질주하는 열차를 자본주의 시스템을 표상하는 공간으로 표현해냈고, 넷플릭스의 투자를 받아 온라인 전 세계 방영을 시도했던 '옥자'는 모험극에 인간과 동물 사이의 사랑이야기를 휴머니즘으로 담아냈다.

이러한 봉준호 감독의 장르 비틀기는 그 자체로 독특한 유머를 만들어내는 장치이기도 했다. 이를테면 '살인의 추억'의 그 살풍경 속에서도 우리는 '수사반장'의 한 대목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주는 풍자적 웃음을 경험했고, '괴물'로 인해 파괴되는 서울의 풍경 속 한 가족이 겪는 비극 속에서도 이를 대처하는 시스템의 무능을 고발하는 통쾌한 웃음을 터트린 바 있다.

모성애의 잔인함을 담아낸 '마더'는 그 엔딩에서 보여진 김혜자의 춤사위로 섬뜩함과 웃음이 뒤섞인 그 느낌을 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기생충'도 마찬가지다. 시종일관 빵빵 터지는 블랙코미디적 웃음은 후반으로 가면 묵직한 울림으로 변주된다.

영화
영화 '설국열차'

◆공간으로 담아내는 봉준호 감독의 풍자 세계

'지리멸렬'의 첫 번째 에피소드인 '바퀴벌레"가 그의 풍자적 성향을 드러냈다면, 두 번째 에피소드인 '골목 밖으로'는 봉준호 감독 특유의 공간에 대한 해석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어느 집 앞에 배달된 우유를 마치 자기 집이나 된다는 듯 까먹고는 심지어 신문배달원에게 하나를 건네는 뻔뻔한 신문사 주필. 조깅을 하는 주필이 떠나고 나자 집주인에게 우유도둑으로 몰리고, '신문사절' 통보를 받은 신문배달원이 골목에서 주필과 추격전을 벌이는 장면을 통해 봉준호 감독은 골목을 미로 속에서 진실을 찾는 당대 언론의 풍경으로 상징해낸다.

공간으로 담아내는 봉준호 감독의 풍자 세계는 '괴물', '설국열차'에서도 빛을 발한다. '괴물'은 '한강의 기적'으로 지칭되는 한강이라는 공간을 가져와 그 곳이 사실은 괴물을 잉태하는 공간이었다고 해석해낸다.

'설국열차'는 꽁꽁 얼어붙은 빙하의 시대에 같은 레일을 빙빙 도는 열차라는 공간을 통해 자본주의 시스템이 어떻게 굴러가는가를 그려낸다.

꼬리 칸에서 머리 칸으로 가는 여정을 마치 미식축구 경기를 보듯 하나의 미션 클리어 과정으로 담아내는 영화는 그 칸 하나를 오를 때마다 윗계급의 달라진 풍경들을 보여준다. 결국 이 계급상승의 욕망으로 인해 멈추지 않고 달리는 열차라는 공간은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동력을 보여준다.

'기생충'은 이 공간으로 담아내는 봉준호 감독의 풍자 세계를 거의 극점으로 보여준 작품이 아닐 수 없다. 반지하와 지상 그리고 지하라는 공간과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너무나 다른 삶이 대비된다.

그 공간들은 보이지 않는 계급의 선에 의해 나뉘어져 있지만, 냄새라는 지울 수 없는 인간의 흔적은 그 선을 넘는다. 봉준호 감독은 이렇게 누군가에 기생하여 살아가는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낮은 지대에서 높은 지대로 올라갔다가 다시 그 곳에서 밑바닥으로 내려오는 그 공간의 이동을 통해 그려낸다.

이처럼 봉준호 감독이 구축해온 그만의 장르적 세계는 깊이(완성도)와 함께 넓이(대중성)를 모두 만족시키는 쉽지 않은 성취를 해낸다.

보다 쉽게 공간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을 풍자적으로 상징하고, 익숙한 장르적 틀을 비틀어 새로움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봉장르의 세계는 완성되었다. 그냥 봐도 재밌지만, 한층 들여다보면 더 재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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