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겸재 선생, 일만이천봉을 한 컷에

이인숙의 옛 그림 예찬

정선(1676~1759) 작
정선(1676~1759) 작 '정양사' 종이에 먹과 담채 22.1X61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인숙
이인숙

조그만 부채꼴 선면(扇面)에 금강산 경관이 전부 들어 있다. 겸재(謙齋) 선생에게 이 부채를 그려 받은 그 사람은 자랑스럽게 쥐고 다니며 금강산 바람을 훨훨 상쾌하게 부쳤을 것이다. 그 가 누구였는지 모르지만 정말 부럽다. '정양사'(正陽寺)로 제목을 쓴 옆에 늙은 겸재인 '겸로(謙老)'로 서명했고 '원백(元白)'으로 자를 새긴 인장을 찍었다.

정양사는 고려 태조가 담무갈보살을 친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절이다. 금강산의 주봉인 비로봉 정맥에 자리 잡아 정양사라 했고, 내금강이 한 눈에 들어오는 명당이어서 금강산 답사의 필수 코스였다. 담무갈보살이 거느린 권속의 숫자인 일만이천의 봉우리는 우뚝우뚝 솟았는데 팔만구암자는? 기암괴석 사이 드문드문한 숲 아래 꼭꼭 숨은 지붕들이 있다. 헐성루 앞 천일대 언덕의 갓 쓰고 두루마기 입은 탐승객 두 분은 답사 일정을 의논하시는 듯.....

정선은 금강산그림을 '금강전도'(삼성미술관 리움 소장)처럼 전도로 그리기도 했고, 이름 난 명소를 부분도로 그리기도 했다. 그런데 '정양사'처럼 부분도에 전도를 다 담은 그림도 많다. 단발령, 장안사, 불정대, 벽하담, 만폭동, 해산정 등 명소 그림에도 일만이천봉을 다 그려 넣었다. "한 입 먹어보면 솥 안의 고기 맛을 다 알 수 있다"는 상정일련(嘗鼎一臠)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실력이다. 발로 누볐던 금강산이 가슴 속에 언제나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한양 북악산(백악산) 아래 청운동에 살았던 정선은 세 번 금강산을 다녀왔다. 기록이 있어서 알 수 있는 것이 그렇다. 36세 때인 1711년(숙종 37년)과 이듬해인 1712년, 그리고 72세 때인 1747년(영조 23년)이다. 정선은 84세까지 장수하며 부지런히 그림을 그렸고 만년에도 필력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선생은 조선 화가들 중 금강산을 가장 많이 그렸고, 가장 잘 그렸다. 그림 지도의 전통을 소화한 위에 직접 체험한 실경의 박진감을 자신만의 구도로 요약하고, 푸른 담채와 여백을 조화시키며 칼칼한 선과 부드러운 점으로 골산(骨山)과 토산(土山)이 어우러진 금강산그림의 영원한 전형을 남겼다.

대구는 올해도 벌써 대프리카를 영접하는 중이라 시원한 부채그림으로 이 기회를 감당해 보려 한 것이 글쓴이의 고심이었다. 우리나라 쥘부채인 접첩선(摺疊扇)은 중국에서도 유명해 북송의 '도화견문지'에 고려 사신이 가지고 있던 부채 그림 이야기가 나온다. 예찬이 마땅한 옛 그림으로 이 코너를 이어가려 한다. 한 더위 동안 시원한 부채그림과 함께 해 주실 독자 분들께 먼저 감사드린다.

미술사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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