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원에서 근무하는 약사는 의사나 간호사처럼 환자와 직면 대면하지 않더라도 처방 약물을 통해 치료와 회복을 돕는다. 특히 대학병원 약제부에 소속된 약사들은 환자의 약물치료 과정에서 처방을 검토하고 정확하게 조제할뿐만 아니라 약품의 치료 효과와 부작용을 모니터링하는 임상업무를 맡고 있다. 병원에서 사용하는 2천여 종류의 의약품을 관리하고 약품 정보를 의료진에게 알리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다.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약사가 진료팀의 일원으로 환자 회진에 참여하면서 '약사의 시각'을 보태 한층 높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아직은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전문약사'다.
비수도권 대형병원으로는 최초로 소아청소년과와 혈액종양내과 병동에서 전문약사제도의 실제 정착을 이끌어 가고 있는 천주향(51) 영남대병원 종양전문약사.
그는 매일 담당 교수와 전공의들과 함께 암 환자들의 회진에 참여한다. 천 전문약사는 회진 전 의무기록을 통해 환자 상태를 미리 파악한다. 항암치료 프로토콜(규칙)에 따른 용량, 투약주기, 투약순서, 항구토제의 적합성, 병용약물의 처방 적정성 등을 검토한다.
◆항암치료 환자 함께 회진 '약사의 관점'에서 관찰
"직접 환자 상태를 보면서 약사의 관점에서 약물 부작용이나 불편한 점이 관찰되면 환자와 개별 상담을 합니다. 추가적인 악물이 필요하다고 판단되거나 회진 당시에 말하지 않은 중요 사항이 있으면 의료진에게 연락하고 처방에 반영합니다. 환자 개별 맞춤형 치료가 이뤄지니 만족도 또한 높아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세포독성항암제 위주의 예전 항암치료와는 달리 최근 표적치료제나 면역항암치료제 개발로 투여 시 고려할 사항이 많다고 했다. 예를 들어 림프종 암의 경우 공격적인 항암치료가 예후를 좋게한다는 보고가 있다. 환자에 대한 처방이 항암제만 5종, 보조 약물 또한 5개 이상이다. 또 중간에 항암제 부작용을 예방하는 약물도 들어가야 한다. 약 종류가 많다보니 복약 순서가 헷갈릴 수도 있다. 이럴 때 종양전문약사의 존재가 드러난다. 항암제의 표준 투약량도 환자의 체중, 부작용 정도에 따라 '개별적 보정'을 해준다.
병동에서 만난 소아청소년과 4년차 전공의는 "각종 항암제 복용에 대한 환자교육은 의사로서 한계가 있는데, 천 약사님이 환자 눈높이에서 쉽게 설명을 잘 해주신다. 또한 수련 중에 처음 접하는 약물에 대해서도 저널에 나타난 최신 자료며 대사 관련 효과 근거를 알려줘서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천 전문약사는 2017년 소아청소년과 이재민 교수에 이어 지난해부터 혈액종양내과 김민경, 이경희 교수팀의 협업 요청을 받고 종양 치료분야에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김 교수는 "환자가 항암제 부작용을 호소하면 전문약사가 옆에 있어 약품정보실을 거치지 않고 바로 해결이 된다"면서 "병원에 종양전문약사를 늘리면 좋겠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지만 인력 수급, 진료 수가 문제 등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했다.
◆항암치료 받아본 경험이 '환자 입장' 잘 알아
항암 분야 전문약사로 임상치료에 도움을 주고 싶어하는 마음은 그의 개인 경험과도 무관치 않다.
천 전문약사는 2015년 2월 경계성 종양 진단으로 고강도 항암치료를 받았다. "직접 조제하던 항암제가 내 몸 속으로 들어올 때 기분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없었죠. 건강보험이 정한 항구토제로는 치밀어오르는 구토를 감당하지 못해 비급여라도 좋으니 충분히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약물을 보험기준에 맞춰 사용하면 환자 삶의 질은 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환자에게 고통스러우면 적극적으로 알려달라고 합니다."
매주 12회의 항암치료가 끝난 후에도 항암제 부작용으로 온몸이 몇달 간이나 아파서 과연 회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약사로 근무했던 덕분에 부작용 관리며 예방이 어느정도 가능했지만, 일반인들은 이 고통을 겪으면서 어떻게 견디는지 생각했다"면서 "항암제를 주입 받고 혼자 버려진 듯한 느낌을 알기에 지금도 환자교육에 신경을 쓴다"고 설명했다.
이듬해 복직을 하고, 그는 2016년 대구경북지역 최초로 종양전문약사를 취득했다. 그 전까지 배출된 107명의 종양전문약사 중 103명이 수도권 병원 출신이라는 점에서 지역의 병원에서는 전문약사 역할의 중요성을 모르고 있었다.
그는 이후 종양전문약사 양성을 위한 인프라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병원약사회 백진우 전 회장의 지원으로 대구·경북지부에서 전문약사 TF를 조직, 다양한 오프라인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그 결과 2017, 2018년 각각 10명이 전문약사 시험에 합격했고, 대구경북에선 모두 29명의 전문약사를 배출하고 있다.
"전문약사를 통한 임상업무의 확대로 약대 졸업생들이 가장 오고 싶은 병원으로 만들어 보람을 나누고 싶습니다. 아울러 수도권의 대부분 병원에서 실시하는 중환자실전문약사를 포함해 영양, 감염 분야 등으로 임상 영역을 확대해 양질의 의료를 제공하는 병원약사의 역할을 알리고 싶은 바람입니다."
천주향 종양전문약사는? ▷1991년 영남대학교 약학대학 졸업, 영남대병원 약제부 입사 ▷2006년 영남대 약대 임상약학대학원 졸업 ▷2016년 한국병원약사회 종양전문약사 취득 ▷2017년 미국종양전문약사(BCOP) 취득 ▷2018년 한국병원약사회 중환자전문약사, 미국영양전문약사(BCNSP) 취득 ▷한국병원약사회 학술위원, 종양분과위원 ▷병원약학교육연구원 기획부위원장 ▷2011년 Best Pharmacist 수상 ▷2018년 대구경북지역 병원약사회 학술우수상, 특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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