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 뒤 매화산 너머에는 가야산 해인사가 있다. 십리 남짓 홍류동 소리길을 따라 솔바람 소리 들으며 계곡 사이를 걷다 보면 금세 해인사에 다다른다. 천년고찰에는 고려 팔만대장경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되어 빛을 발하고 있다.
한국 불교를 지켜낸 수많은 고승들의 공부 요람이었으며 신라 최치원의 흔적이 여러 군데 명칭이 되어 남아 있는 곳이다. 해인사의 뜻풀이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바다가 고요해지면 삼라만상이 물 위에 찍힌 듯 그대로 드러난다'는 해석에 한 표 드린다.
탐욕이 분노로, 분노가 어리석음으로 이어지는 우리 마음이 언제나 고요해질 수 있을는지. 산중 도량의 한량함, 쾌적함, 고요함, 무관심 속에서 평온, 하심, 참회, 감사, 자비의 마음을 갖게 될 때 우리는 언뜻 해인을 잠시나마 경험할 수 있으리라. 고찰 해인사에는 그런 마음을 갖게 만드는 암자가 20여 개나 있다.
해인사는 어느 암자에 가더라도 역사, 전통, 평온, 그윽함을 느낄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이를테면 산중 불교 캠퍼스이다. 일본 고야산 진언종 총본산과 비슷하다. 수많은 절에서는 기도와 수행, 템플스테이를 하고 있었으며, 일본인이 죽어서 가장 가고 싶어하는 불교 묘지공원도 거기 있었다.
광활한 산사에는 반드시 필요한 시설만 있고 모든 것이 고요하고 청정하게 있는 그대로 서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저절로 경건함을 느끼게 하였다. 가야산과 고야산은 서로 닮아 있었지만 다른 점도 있었다.
일전에 해인사 포교국장 스님과 한국 불교 발전 방안에 대한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한국 불교의 쇠퇴 현상 극복 얘기였다. 불법승 삼보 중에서 누가 분발해야 하겠는가를 물으셨다. 나는 승단이 앞장서서 분발해야 한다고 했다. 계향, 정향, 혜향. 해탈향, 해탈지견향은 수행의 단계적 진화를 향기로 은유한 것이다.
수행의 좋은 향기가 진동하면 대중은 나비처럼 운집할 것이라 믿는다. 유월이 깊어가는 가야산 계곡에는 초여름의 수목 향기가 가득하여 심신이 공중에 뜨는 듯 경쾌해진다. 며칠 전 아주 더운 날 해인사 공양간에서 먹은 열무냉면 맛이 잊히질 않는다. 비구 스님이 땀을 뻘뻘 흘리며 설거지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해인사가 우리를 부르는 듯하였다.
대구대 명예교수
댓글 많은 뉴스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전광훈 "대선 출마하겠다"…서울 도심 곳곳은 '윤 어게인'
이재명, 민주당 충청 경선서 88.15%로 압승…김동연 2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