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영면에 드셨다. 팔십 평생 홀로 삼 남매를 꾸려 오신 나의 아버지. 아버지는 이제야 당신의 멍에를 내려놓으신다. 슬프지만 슬프지 않으려 애를 썼다. 분명한 아쉬움과 죄스러움은 상존했다. 다만 아버지는 당신의 자리에서 송구할 만큼 충만했으며, 우리 삼 남매에게는 과분해 마지않는 당신이었으리라. 그렇게 후회 없는 삶을 영위하셨기에, 이것이야말로 슬픔을 억눌러야 할 당위(當爲)였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폭탄을 만들던 사람도, 총부리를 겨누던 서슬 푸른 사내들도, 집으로 돌아오면 자식들의 그네를 고쳐주는 아버지가 된다고 했듯이, 강한 아버지는 우리 삼 남매의 '나라'였다. 자식들이 먹먹해하지 않도록 아버지는 묵묵한 걸음을 선택하셨다. 무던히도 고독했던 그 발걸음. 이제는 시름을 떨쳐내고 영락을 누리실 것을 앙망한다.
장례식에 별도의 문상객을 받지 않았다. 부의금 역시도 정중히 사절했다. 여기에는 수년 전부터 이뤄진 가족 간 암묵적 동의가 작용했다. 바로 '가족장'에 관한 이야기다. 가족장이란 유족 동의를 토대로 친족 및 고인과 직접적으로 연계돼 있는 지인 일부로 (장례) 동참 인원을 한정하는 이른바 '작은 장례식'의 형태를 띤다.
평소 소탈하셨던 아버지의 성정 탓도 있겠거니와 조사(弔事)란 퍼뜨려야 한다는 허식(虛飾)을 일정 부분 타개하고자 했다. 더불어 조문과 부의에 관해 상대로 하여금 부담 해소 차원에서와 원론적이긴 하나 잉여 절차와 과한 장례 비용을 줄인다는 명분과 실리를 더해, 아버지를 향한 참된 추모를 영위하고자 했다.
물론 오해도 있었다. 가까웠다면 가까운 지인들에게까지 조문을 막았으니 말이다.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아버지의 뒤안길이 설혹 외롭지 않으실까 순간순간 감정의 동요가 일기도 했다. 뒤늦게나마 '늦은 부고'를 통해 진심을 전했다. 양쪽 모두에게 서운한 마음 금할 길 없었겠으나 응당 이해하고 아울러 명복을 빌어주더라. 감사하게도 말이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2018년 기준 평균 장례비는 1천400만원을 육박한다. 화장을 통해 납골당에 모신다고 해도 비용은 적지 않다. 작은 함 한 칸에 1천만원을 넘는 경우도 태반이다. 물론 고인(故人)의 명복을 비는데 금액적 문제가 대수일쏘냐. 아버지가 지내온 치열한 삶의 궤적에 비하면 고인의 걸음걸음 비단길을 펼칠지언정 결코 과할 리 없을 것이다. 다만 통상적 형식에서 벗어나 오롯이 고인을 추모하는 데 집중하는, 말 그대로 소규모 장례식에 관한 사회적 인식이 호응을 얻고 있다. 예전과 비교해 앞당겨진 은퇴 시점과 소가족 구성원이 주를 이루는 시대, 이를 방증하듯 사회적 네트워크는 자연스레 협소해지고, 또 이 같은 상황에 기인함으로써 (장례식) 절차 간소화와 경제적 비용 지출이 사회현상으로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형식을 도외시하자는 것이 아니다. 마음만 놓지 않는다면 충분히 공감, 한발 더 나아가 수용할 수도 있는 문제다.
아버지는 빈손으로 세상에 오셨다. 그렇기에 당신은 유지를 통해 그저 빈손으로 돌아가고자 하셨다. 우리 삼 남매는 조문객을 맞는 대신, 아버지의 영정 앞에서 삼 남매만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우애를 다졌다. 아버지의 의중이었으리라 믿는다. 그렇게 아버지는 마지막 가시는 그 길목 어귀에서, 우리를 한자리에 모아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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