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은퇴 자금

서종철 논설위원
서종철 논설위원

나이가 들고 은퇴하면 많을수록 좋은 게 건강과 친구다. 또 소일거리나 취미, 평생학습도 젊게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뭐라 해도 노후를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은 경제력이다. 여러 노후 대책 가운데 은퇴 자금 부족은 불안한 노후와 바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미국 성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인 26%가 은퇴에 대비한 저축이 전혀 없었다. 더 세부적으로 45~59세 중년층의 17%, 60세 이상 은퇴 연령층의 13%만 '노후 준비가 없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젊은 세대와 비교해 중년층 이상은 나름 준비가 잘돼 좋은 대조를 이뤘다.

일본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몇 해 전 한 경제주간지가 60~65세 정년퇴직 남성 3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노후 준비에 대한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은퇴 자금이 1천만엔(약 1억900만원) 미만이고, 연금에 의존하는 은퇴빈곤층이 전체의 41.3%였다. 또 노후 자금 1천만~3천만엔 아래로 준비한 은퇴중산층이 29.7%로 상대적으로 처지가 낫지만 불안한 노후를 걱정해야 하는 부류로 꼽혔다. 반면 3천만엔 이상 저축한 은퇴부유층은 29%에 불과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장수'(長壽)라는 변수가 돌출했다. '100세 시대'를 맞으면서 지금과 같은 은퇴 준비로는 노후가 어렵다는 진단이 나온 것이다. 최근 일본 정부가 노후 자금으로 2천만엔을 더 모아야 한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가 역풍을 맞았는데 자민당 정권이 '100년 안심'을 내세우더니 말을 바꿔 공적 책임을 포기하려 한다는 비판 여론이 거셌다. 속사정이 어떻든 수명이 길어질수록 불안한 경제력이 노년의 최대 위협 요인인 것은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한때 '노후 자금 10억원' 신드롬이 크게 돌출한 적이 있다. 이를 두고 금융사가 과장된 '공포 마케팅'으로 불안감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높았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 한 자릿수로 추락한 개인저축률과 저금리는 65세 이상 노후빈곤율이 48.6%에 이르는 우리 현실은 큰 고민거리다. 넉넉하지는 않아도 걱정 없는 노년에 대해 정부가 더 고민하고 사회적 공감대도 커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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