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서정길(달성문화재단 대표)씨가 두 번째 수필집 '아름다운 공존'을 펴냈다. 수필집 '알아야 면장하제'를 출간하고 5년만이다. 서 수필가는 이번 수필집에 묶은 글들에 대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겪은 소소한 일상을 기록하고 해석한 것이다. 사회적 관심에서 비켜나 있는 글들로 내 개인의 감정과 사유를 담고 있다."고 말한다.
책은 모두 5부에 50개 작품으로 구성돼 있다. 지은이의 말처럼 거의 대부분 작품들이 일상에서 만나게 된 일을 배경으로 지난 세월을 회고하고 관조하는 내용들이다. 지은이는 "깊은 사유나 통찰력으로 무장한 글은 못되지만, 내 글이 단 한사람에게라도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 인생은 몽당연필을 타고 가네
'몽당연필'은 아들의 고급스러운 필통을 보며 시작하는 작품이다. 필통 안에는 아직 깎지도 않은 새 연필과 샤프펜슬, 쓴 적이 없어 원형 그대로인 지우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어린 시절 책보를 둘러메고 뛰다보면 연필이 여기저기 부딪혀 심이 부러지기 일쑤였고, 글이 너무 흐릿해 침을 묻혀가며 썼다. 그뿐인가. 가난한 시절이라 필통에 든 것은 죄다 몽당연필이었다.

침 묻혀가며 '몽당연필'을 썼던 자신의 세대와 연필인지 장식품인지 모를 멋진 연필을 갖고 있는 아들 세대를 은근하게 비교하는가싶더니, 몽당연필 쓰는 아들이 안쓰러워 새 연필을 사주시고, 자신은 몽당연필을 볼펜대에 끼워 쓰셨던 아버지에 대한 추억으로 넘어간다.
그러더니 문득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쓰느라 작은 몽당연필이 되어버린 자신을 돌아보며, 내버려지기 전에 끼워서 쓸 대롱하나쯤은 장만해두어야 겠다'며 예순을 훌쩍 넘겨버린 노신사의 다짐으로 끝을 맺는다. 몽당연필 하나에 3대의 사연을 얹고, 나아가 인생의 다짐까지 실은 셈이다.
◇ 속내를 숨김없이 드러내는 글
흔히 수필을 자신을 찾아가는 글이고, 가장 솔직한 글이라고 한다. 하지만 날것 그대로 솔직하고, 담백한 작품을 만날 기회는 흔치 않다. 가령 자연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이기적인 인간의 입장'에서 출발한 글들도 결국에는 '인간도 자연의 일부요' 하며, 자연의 입장으로 돌아가는 글이 태반이다. 농사에 관한 글들도 마찬가지다. 결국 동물도 곤충도 사람도 다 살자고 하는 거 아니냐며 '욕심 버리고 함께 사니 평화롭고 복되도다.' 하며 '좋은 소리'로 맺기 일쑤다. 정말로 그런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서정길의 작품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고고한 맛은 떨어지나 인간적인 솔직함을 느낄 수 있다.
'농사를 갈무리할 때면 새, 고라니, 두더지, 멧돼지 무리는 떼강도로 돌변한다. 눈곱만큼의 양심도 없다. 환경론자들은 생태계 보전을 위해 야생조수를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중략) 사과 속에 땅벌이 진을 치고 있었다. 껍질을 그대로 두고 구멍을 꼭지에 구멍을 내어 즙을 노략질하고 있었다. 제때 농약을 살포하지 않은 게 못내 후회되었다. (중략)아직은 짐승이나 미물과 공존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태생적으로 가난하게 살아온 농민의 아들이어서일까.' -초보 농사꾼의 일기- 중에서
◇ 사회 속의 '나'와 자연속의 '인간'
문학평론가 여세주 경주대 교수는 "사회 속에서 개인이 가진 의미와 자연 속에서 인간의 위치에 관한 사색이 서정길의 수필세계를 구축한다."고 평한다. 그런 까닭에 서정길의 수필은 '자연과 자아의 공존'이자 사회 문화적 환경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를 겪는 개인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나를 찾아가는 글쓰기라는 것이다.
서정길 수필가는 "아직 연마가 부족하다 싶어 책을 낸다는 게 쑥쓰럽습니다. 그럼에도 내 안에 꿈틀거리는 속내를 드러내고픈 욕망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두 눈 꾹 감고 저의 속마음을 한 권의 책에 담았습니다."고 고백한다. 248쪽, 1만4천원.
▷ 지은이 서정길
1955년 4월 달성군 옥포에서 태어났다. 38여 년간 공직에 몸담다가 지방부이사관으로 명예퇴임 했다. 2005년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했으며, 수필집 '알아야 면장하제'(2014)를 펴냈다. 대구문인협회이사, 한국수필가협회이사, 대구가톨릭문인협회, 수필가비평작가회의, 대구수필문예회, 수필미학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한다. 달성복지재단이사장을 역임하고 현재 달성문화재단 대표이사로 있다.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