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월의 흔적](27) 냉면

본고장 이북의 맛 살리고, 여름철 입맛도 살리는 냉면

김 종 욱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김 종 욱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날씨가 더워지자 냉면집이 부산하다. 냉면은 대구의 전래음식이 아니다. 대구에는 얼큰한 국물이 있는 탕반음식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다가 피난 내려온 사람들이 생활 방편으로 가게를 열고 냉면을 팔기 시작하였다.

그 시절 서문시장 주변에는 피란민들이 꾸려나가던 음식점이 많이 있었다. 그 가운데 냉면집도 더러 있었는데, 강산면옥․황해집․남포집․사리원집․대동면옥 같은 가게들의 인기가 대단했었다.

그 사람들은 음식 솜씨가 뛰어났다. 뿐만 아니라 경상도 사람들보다 친절하고 사업 수완도 좋았다. 거기다 국말이밥 말고는 먹을 만한 음식이 별로 없던 시절이라서 냉면은 단연코 인기가 높았다.

그런가 하면 당시 인기가 높았던 불고기와도 음식 궁합이 잘 맞아서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무더위를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여름철 별미로 냉면만한 게 없다.

냉면은 평안도․함경도․황해도 같은 이북지역이 본고장이다. 평양의 냉면은 1910년대부터 '평양조선인면옥조합'이 생길 정도로 대중적인 음식이었다. 평양뿐 아니라 평안도 전체가 '냉면의 나라'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일상 음식이었다. 또한 그것은 겨울철에 즐겨 먹던 시절 음식이었고, 살얼음이 뜬 동치미 국물에다 메밀면을 말아 먹는 것을 최고의 맛으로 꼽았다. 그런가 하면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꿩고기를 이용한 고기 육수에 말아낸 냉면도 있었다.

함경도에서는 감자나 고구마로 만든 전분 국수가 대중적인 음식이었다. 감자 전분 면발에 식초로 삭힌 가자미회를 얹고 고춧가루나 마늘로 양념을 한 '회국수'는 훨씬 뒷날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흥남지역에서 회국수를 많이 먹었으나 오늘날 북한에서는 국물이 없는 회국수보다 국물이 있는 '감자농마국수'를 더 즐겨 먹는다.

황해도에서는 해주와 사리원이 냉면의 중심지였다. 다 같은 물냉면이라도 황해도 냉면은 평안도 것보다 면발이 굵다. 또한 돼지고기 육수를 많이 사용해 진한 고기 맛을 기본으로 하면서 간장과 설탕을 넣어 단맛이 난다. 사리원의 냉면 가게들은 '면옥노동조합'을 결성할 정도로 크게 번창했었다.

나는 동문동에 있는 한 냉면 전문음식점에 단골로 드나들고 있다. 그 집은 구한말부터 평양에서 냉면 가게를 하면서 제분소까지 운영하던 큰 규모의 사업가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피란을 내려와 생계 수단으로 부산에서 가게를 시작하였다.

1960년대에 들어서 부인이 대구로 올라와 가게를 차렸다. 그 뒤 부산의 가게보다 대구의 가게가 더 잘되자 부산의 가게는 문을 닫고 대구의 가게와 합쳤다. 냉면 맛이 좋기로 소문났다. 메밀로 만든 냉면인데 면발이 쫄깃쫄깃하고 담박하다. 육수 또한 특이하다. 사골, 잡뼈, 인삼 같은 재료를 하루 동안 푹 우려서 만드는 뜨거운 육수가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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