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빌바오(Bilbao)는 유럽의 철강, 화학, 조선 산업, 무역의 중심이었으나 1980년대 경제 불황을 맞으면서 쇠락하기 시작하였다. 지역의 경제 상황이 심각해지자 빌바오시는 미국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하여 쇠락한 도시를 세계적인 문화관광도시로 탈바꿈시키는 데 성공한다. 스테인리스가 춤추는 듯한 모양을 하고 있는 독특한 디자인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보기 위해 한 해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이 도시를 찾으면서 대표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스페인의 디자인은 구겐하임 미술관이나 가우디의 성가족성당과 같은 건축물뿐만 아니라 스페인 사람들의 생활 속에도 스며들어 있다. 문화가 주도하는 도시의 공공디자인에서도, 또 일상의 생활용품 디자인에서도 사람에 대한 배려가 묻어난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처럼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스페인 문화가 담겨 있고, 강렬한 색상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사람들의 일상 속에 함께하는 것이 특징이다.
음식 문화에도 디자인을 입혔다.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막대 사탕 츄파춥스 로고를, 디자이너 마누엘 에스트라다는 후추통의 이미지를 디자인했다. 스페인 와인 레이블과 병 모양 디자인은 독특하면서도 아름답기까지 하다.
영화배우 페넬로페 크루스와 축구 선수 박지성 같은 유명인이 등장하기도 하고, 와인으로 잉크를 만들어 레이블 작업을 한다거나, 여러 병의 그림이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그림이 되기도 한다. 병이 갖고 싶어 와인을 사게 할 만큼 와인 품질은 물론 개성 넘치는 디자인으로 소비자에게 다가감으로써 와인 소비뿐만 아니라 와이너리를 찾는 관광객의 수도 늘었다.
음식과 결합한 디자이너의 상상력은 감각적이면서도 효율적인 주방용품에서도 볼 수 있다. 팔레트 모양의 개인용 스탠딩 뷔페 접시, 음식이 묻은 채 식탁에 놓아도 바닥에 닿지 않아 위생적인 포크와 스푼, 식재료를 분쇄하는 데 쓰는 핸드믹서기도 스페인에서 탄생했다. 주방용품 디자인은 음식을 예술로 만들어 스페인을 미식의 나라로 알려지게 하였고, 또 스페인 전체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식품산업에도 영향을 미쳤다.
음식과 디자인의 상호 영향은 전통시장을 살려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도 기여했다. 전통시장이라는 본래의 공간적기능적 원형은 유지하면서 창의적인 디자인 요소를 도입한 것인데, 지역 주민들을 위한 전통시장의 기능에 주차장과 음식점 등 편의시설을 추가하여 관광객 유치에도 나섰다. 이제 스페인을 찾는 관광객이라면 유명한 전채요리 타파스(tapas)를 맛보기 위해 레스토랑보다 전통시장을 먼저 떠올릴 만큼 시장은 가고 싶은 곳이 됐다. 1800년대 중반 문을 연 마드리드의 산미겔(San Miguel) 시장은 2009년 혁신적인 디자인을 적용하여 다시 문을 열었는데 기둥, 철재 골조는 그대로 남기고 사면을 외벽 통유리로 마감해 안쪽이 투명하게 보이도록 했다. 마드리드시가 이 건물을 유적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을 만큼 건축적 가치를 보존하였고, 연간 400만 명 이상 방문할 정도로 인기다.
2008년 경제 위기 이후에는 의류, 음료수, 핸드폰, 침구류 등과 같은 일반 소비 제품에 젊은 디자이너의 작품을 삽입하여 시장 경쟁력을 높임으로써 라이선싱 판매 수입뿐만 아니라 생산 기업의 매출 확대로 이어졌다. 한국의 한 화장품 회사가 스페인에 진출하면서 시장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화장품 용기에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삽입하였을 만큼 스페인에서 디자인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디자인 혁신을 강조하며 세계 패스트 패션을 주도하는 패션기업 인디텍스도 스페인 기업이다. 이렇듯 스페인의 독창적인 디자인은 경제 불황을 녹이는 원동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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