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만식의 단편소설 '맹순사'는 광복 전후에 걸친 순사의 삶을 통해 혼란한 사회상을 그렸다. 8·15 광복과 함께 8년간의 순사 생활을 그만둔 맹순사는 한몫 챙기는 재주가 부족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해먹은 게 적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돌팔매질 당하는 곤욕은 피할 수 있었다고 자위한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맹순사는 비록 친일 행위를 했지만 경력을 내세워 해방된 조국의 새 경찰이 된다.
그런데 근무처에서 만난 동료를 보고 깜짝 놀란다. 그는 바로 일제강점기 때 자신이 감시했던 강력범으로 정치범과 함께 풀려나면서 경찰로 변신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맹순사는 '저런 놈들까지 순사가 되니 순사가 욕을 먹지…'라고 중얼거린다. 채만식은 해방 후 혼돈과 모순된 사회를 이렇게 풍자적으로 그렸다. 사실 대한민국 경찰의 출발은 이렇게 친일의 그림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순사'(巡査)란 치안을 담당했던 일제강점기 계급이 낮은 경찰관이었지만, 공포와 증오의 상징적 대상이었다. 우는 아이를 뚝 그치게 하는 것도 호랑이나 곶감이 아닌 바로 '순사 온다'는 말 한마디였다. '순사'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통칭되던 경찰에 대한 인식은 1980년대까지 이어졌다. 이른바 민주화 이후 경찰의 모습은 영화 속에 그대로 투영되었다. 처음으로 흥행한 경찰 영화가 바로 '투캅스'이다.
YS의 문민정부 출범과 더불어 개봉한 '투캅스'는 5공 시절 만연했던 경찰의 부패상을 적나라하게 풍자했다. 속편 '투캅스'에서 타락한 선배 형사(안성기)에게 비판적이던 젊은 형사(박중훈)가 선배의 모습을 닮아가는 모습에서는 개혁의 좌절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이명박 정부 첫해에 개봉한 '추격자'는 '투캅스'와 확연한 대조를 이룬다. '투캅스'가 '공권력의 부패'를 주제로 다뤘다면, '추격자'는 '공권력의 부재'가 핵심이었다.
박근혜 정부 때 등장한 영화 '베테랑'은 재벌 3세의 갑질에 맞서 정의를 구현하는 베테랑 형사(황정민)의 모습을 보여준다. 최순실 게이트 이후 부패한 권력에 대한 분노와 대안 권력에 대한 시민적 열망이 녹아 있다는 평가도 있었다. 촛불 시위 이후의 경찰 영화로는 '범죄도시'가 주목을 받았다. '범죄도시'에서는 괴물 형사(마동석)가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수단을 가리지 않는 적나라한 공권력에 대중이 박수를 보내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경찰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연출이야말로 무능한 경찰에 대한 국민적 욕구 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역설이 아닐까. 문재인 정권이 출범하면서 경찰의 공권력이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집회나 시위 또는 사건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들이 폭행을 당하고 부상을 입고도 벙어리 냉가슴 앓듯 하는 사례가 일상화되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할 '민중의 지팡이'가 어쩌다가 자신도 지키지 못하는 '동네북'이 되어버렸는가.
특히 무소불위의 권력 집단이 되어버린 민주노총의 시위 현장에서 경찰은 공권력의 부재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법 위에 군림하려는 가해자 앞에 경찰은 피해자가 되고도 항변조차 못하는 어불성설이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 말이 좋아 '인권친화적 경찰'이지 '무능한 경찰'에 다름 아니다. 누가 민생 치안의 최일선이요 국가권력의 모세혈관인 경찰의 공권력을 무력화하고 있는가. 울던 아이가 웃을 일이다. 이게 제대로 된 나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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