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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극장이 지니는 의미

김동훈 연극배우

김동훈 연극 배우
김동훈 연극 배우

연극배우로서 활동하다보면 국내에서 유명한 희곡작품을 바탕으로 저명한 연출자들과 작업하기를 학수고대한다. 좋은 희곡은 창작의 욕구를 샘솟게 하고, 실력 있는 창작자와의 만남은 예술적 가치관을 확장시켜 성장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한편 이름 있는 연출자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관객과 어떤 공간, 즉 어떤 극장에서 만나는가이다. 극장이 주는 공간은 배우의 연기를 달라지게 한다. 대극장은 많은 관객에게 극의 내용과 인물의 상황을 잘 전달하기 위해 소리와 움직임을 크게 요구하기도 하며, 소극장은 배우와 관객의 거리가 밀접하기에 세밀한 표정과 목소리의 크기를 조절하여 연기한다. 작품의 유형에 따라 본다면 가볍게 즐기는 대중극은 클래식하고 전통 있는 대극장에서 찾아볼 수 없고, 어둡고 심오한 작품은 아동극을 하는 소극장에서 볼 수 없다. 이처럼 극장은 예술작품과의 관계와 작품의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배우의 입장에서 극장이 지니는 공간은 예술에 임하는 자신의 존재를 정립할 수 있게 한다.

뿐만 아니라 극장이라는 공간은 연극의 발전과 궤를 함께한다. 고대 그리스에는 만 명 넘게 수용할 수 있는 야외극장이 주를 이루었고, 큰 극장은 국가권력과 종교에 관한 거대담론을 주로 다루었다. 르네상스에는 국가와 종교에 대한 관심이 인간으로 집중하면서 극장의 크기는 감소하고 이로 인한 원근법의 발견과 실내극장이 서서히 생겨났다. 이후 19세기말 현대 연극에서는 인간의 권리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심리적인 부분에 중점을 두는 사실주의 연극이 발전하였고, 세밀한 감정을 관객에게 보여주기 위해 소극장이 발달하였다.

오늘날 한국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극장이 존재한다. 명동예술극장(558석)은 주로 고전과 긴 서사를 다루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고, 100석이하의 소극장은 적은 인원으로 진행할 수 있는 소소한 이야기를 다룬 작품들을 볼 수 있다. 물론 소극장이라고 하여 희랍극을 하지 못하거나 셰익스피어 극을 수용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극장의 크기와 작품의 탄생 시기를 짚어봤을 때 희곡이 지닌 에너지는 소극장과 결이 다를 수 있다. 따라서 희곡작품이 지닌 에너지를 극장의 크기에 따라 적절히 운용하는 것도 창작자에 요구되는 역량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관객의 입장에서도 장소가 지닌 의미는 또 다른 관람 포인트가 될 수 있다. 대극장, 소극장이라는 다양한 크기의 극장이 있지만 크기에 따른 공간과 여기서 탄생하는 작품의 힘은 다를 수밖에 없다. 주로 대극장은 볼거리가 많고 긴 서사를 다루기에 적합하며 소극장은 배우의 얼굴을 가까이 볼 수 있어 세밀하고 디테일한 연기를 관람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극장이 지닌 성격을 토대로 취향에 맞게 작품을 선택하는 것도 작품을 감상하는 또 다른 즐거움이 될 것이다. 김동훈 연극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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